쓰고 싶지만 써지지 않는

2023. 10. 10.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출석에 대한 규정이 까다롭다. 한국과 다르게 가족 여행으로 인한 결석을 '무단결석'으로 간주한다. 그동안 여행을 다닌 탓에 학교 수업에 빠진 날이 있었다. 학교로부터 무단결석에 대한 벌로 벌금과 함께 토요일에 학교에 나와 1시간 동안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하필 그 토요일은 남편의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침에 남편이 나와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다줄 수는 있다. 학교에서 내가 1시간 동안 아이들을 기다렸다가 버스로 아이들을 데려와야 한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 시간에 아이들과 버스를 탈 생각을 하니 두려웠다. 평일에는 아이들과 버스를 타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주말은 경험해보지 않아 불안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학교에 보낼 이메일의 내용을 구상하는데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내용을 써도 거절당할 것 같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주장의 근거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 막막하다. 가족 여행을 정당한 결석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주장하면 실패할 것이 뻔하고 통학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면 그것은 부모가 감당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을 것 같고 다른 일정이 있어서 출석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마음이 편치 않다.


어차피 어떤 근거를 대도 학교는 나의 요구를 거절할 것이니 편하게 써서 보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나는 세 시간째 노트북 앞에서 괜히 인터넷 뉴스를 보거나 책을 읽고 있다. 어떤 내용을 써도 마음속에 있는 심판관이 '이거 옳은 일이야?'라고 나에게 묻는다. 불편한 일을 겪어보려고 하지 않고 회피하는 나를 질책하는 것 같다. 그래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다. 칠레는 한국처럼 치안이 좋은 나라가 아니라 무섭다.


점심을 먹으며 남편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으니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해 주었다. 남편은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겠다가 아니라 다른 날에 보내도 되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이건 괜찮을 것 같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것은 소통 방법에 관한 문제였다. 내 의견을 무조건 관철시키려고 하는 나의 태도가 문제였다. 어떤 근거를 들어서라도 상대가 내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내 방법은 거절당할 경우 이기고 지는 싸움이 되어버린다. 나도 좀 손해를 볼 각오를 하고 상대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말한다면 거절을 당하더라도 덜 기분이 나쁠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나는 그동안 이런 식의 소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이메일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부끄럽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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