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관대해지는 주말

2023. 11. 05.

청소에 관대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게을러진 걸까. 이틀에 한 번 물걸레질까지 하던 청소를 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물걸레로 닦는 것으로 바꿨다. 그로 인해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청소에 신경을 덜 쓰니 일상이 더 자유로워졌다. 스스로 나를 억압하던 것들에서 자유로워지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도 살 수 있었는데. 그동안 나를 억압하던 것들에 묶여 있던 내가 아쉽다. 방금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가지러 간 책장에 먼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따 시간 나면 닦아줄게!' 하며 얼른 노트북만 가지고 왔다.


며칠 동안 글을 쓰지 않아도 나를 타박하지 않는다. 쓰고 싶은 의지가 생길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글을 쓰는 일은 노동이 아니고 숙제도 아니다. 나를 괴롭혀가며 쓸 이유는 없다. 주말에 해야 할 숙제를 모두 끝냈다. 가족들이 전부 머리를 잘랐고 이불 빨래도 시작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자연스럽게 노트북 앞에 나는 앉아 있다. 나를 내버려 두었더니 나는 스스로 무엇이든 하고 있다. 지금은 내 인생에 주어진 긴 휴가가 아닌가. 나는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만 잘 해내고 나머지는 나를 자유롭게 해 주기로 했다.


매일 꼬박꼬박 세끼를 차려내던 내가 주말에는 슬며시 아침 식사 준비를 남편에게 넘겼다. 남편은 군말 없이 간장계란밥이나 토스트를 만든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다. 무엇이든 내가 해야 할 것 같고 내가 더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은 오만이었다. 남편이 만든 간장계란밥은 맛있고 그렇게 한 끼를 때우고 나면 점심을 준비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보다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할 수 있게 된다. 남편에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남편이 밥을 차리면 내가 설거지를 하면 되고 남편이 커피를 내리는 사이에 나는 얼른 세탁기에 있는 빨래를 널면 된다. 꼭 절반씩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남편과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나에게 관대해지고 나면 아이들에게도 너그러워진다. 언제 공부를 할 것인지 재촉하지 않는다. 잔소리가 줄어든다. 나를 대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게 된다.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면 아이들은 알아서 공부를 시작하고 마친다. 물론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억지로 하겠지만. 나의 불필요한 잔소리로 아이들과 마찰을 빚는 일은 가급적 줄이고 싶다. 갈등으로 인해 상한 마음을 회복하는데 나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마음이 평화로울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럴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를 편하게 하는 연습을 하면 좀 다르지 않을까. 퇴근 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와서 매끼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꼭 내가 직접 만들어 먹여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집은 좀 지저분해질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나도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학교에서 퇴근하고 집으로 다시 출근하는 일상이 아니라 집에서 조금은 쉴 수 있다고 기대하며 살지도 모른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 하는 단체채팅방이 있다. 대체로 조심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은 그 단체채팅방에서 내 생각과 어긋나는 일이 있었다. 당장 따지고 싶은 마음을 다독이는 나를 보았다. 참으로 신기하다. 이것은 시댁 일인데.

'그래,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오늘만큼은 나는 관대해지기로 결심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차분함이 필요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