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06.
주말에 낮잠을 꼬박꼬박 잤다.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면 졸렸다. 평일에는 낮에 자려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더니 주말에는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어지나 보다. 잘 자고 잘 쉬었는데 오늘 몸이 아팠다.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피곤할 때면 걸리던 질병이 또 나에게 찾아왔다. 다 아는 병인데 겁이 덜컥 났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항생제를 처방받아서 먹으면 되는데 아프면 무서워진다.
평탄한 일상에 계획에 없던 일이 하나 끼어들어서 그렇다.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 남편의 회식, 남편 직장의 긴급 출동 등 갑작스러운 계획이 생기면 나는 늘 불안해했다. 계획했던 것이 틀어져도 마찬가지다. 나는 불안함을 감당하지 못할 때마다 주위 사람에게 화를 냈다.
오늘 아침부터 몸이 아팠다. 마음속에서는 계속 '좀 더 지켜보자, 괜찮아질지도 몰라.' 하며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외면했다. 병원 가는 일이 한국보다 번거롭긴 해도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칠레에서는 나 혼자 병원에 갈 수 없다. 운전을 하지 못하고 스페인어를 못해서 병원은 남편과 같이 가야 한다.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나는 아직도 어렵다. 오후가 되어서야 어렵게 남편에게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최근에 힘든 일도 없었고 직장에 다니지 않아서 스트레스도 없었는데 아픈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픈 것도 자격이 필요한가. 누구나 아플 수 있고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그 당사자가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가족 중 누가 아프면 얼른 병원에 다녀오라고 하면서 나는 병원에 갈 정도로 아픈 것인지 묻고 따지고 확인한다. 참 나에게 못되게 군다. 이곳에서는 한국에서보다 내가 나에게 인색하다.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내일 아침에 병원에 갈까?" 하는 말에 마음이 편해졌다. 병원에 가면 되는 건데. 그게 뭐라고 아침부터 안절부절못하고 고민했을까.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쉴 생각을 하니 아픈 것도 덜 느껴졌다.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외면하지 않고 잘 들어야겠다.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픈 것도, 부끄러운 것도 빨리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겠다. 그것을 인정하는 데 내가 많이 애쓰지 않으면 좋겠다. 늘 무리하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