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9.
평일을 힘들지 않게 보냈는데 주말이 되면 몸이 알아서 쉬고 싶다는 신호를 보낸다.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면 졸음이 쏟아진다. 9월에 페루 여행을 다녀오고부터는 주말에 낮잠을 잔다. 자고 나면 다음 끼니를 준비할 체력과 집안일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나에게 잠은 참 중요하다.
주로 집에서 지내고 집안일만 하는데 힘들 때가 있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집에서 노는데 뭐가 힘들어!' 하는 말이 마음을 스친다. 이것은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이기도 하고 가끔 남편이 나에게 농담으로 하는 말이다. 그런 농담이 듣기 싫어 집안일에 매진한다. 존재의 이유를 그렇게라도 증명하고 싶다. 몸이 힘들 때 억지로 집안일을 하며 그 말이 떠올라 슬퍼질 때가 있다. 그냥 지나가도 되는 말인데 가끔 나는 그 말이 아프다.
무슨 일이든 어디까지가 최선인지 잘 모르겠다. 청소는 대충 하고 싶고 끼니도 대충 때우고 싶다. 매번 정성스럽게 하기 힘들다. 근데 나는 조절을 잘 못하겠다. 내가 좀 더 움직이면 집이 더 깨끗해질 것 같고 반찬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의 도시락에 더 신경 써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다른 아이들은 도시락으로 어떤 음식을 가져오는지 매번 묻지만 다 내가 하기 힘든 것들이다. 그 음식들은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재료비가 비싸다. 아침부터 시간에 쫓기면서 전쟁 치르듯 요리하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는 직장에 다니면서 피곤했는데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남편과 떨어져 지냈던 시간이 많아 아이들을 혼자 돌봐야 했다. 아이들이 잘 때까지 기다리다 늦게까지 유튜브를 보고 잤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잘 해내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을 좋아하면서 잠자는 시간을 두려워했다.
칠레에 와서는 잠을 많이 잔다. 가끔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자마자 바로 침대로 들어가서 잘 때도 있고 점심을 먹고 남편이 낮잠을 잘 때 나도 같이 자기도 한다. 낮에 자도 밤에 잘 잔다. 잔다고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나 스스로도 많이 잤다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잠을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해야 할 일이 없다. 앞으로 그렇게 살기로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잠은 6시간 이상 자기로 다짐했다.
여기서 잘 자고 잘 먹어서인지 몸무게가 제법 늘었다. 뱃살도 늘어났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다이어트를 할 것이라고 나를 믿어보는 중이다. 살짝 오른 볼살은 봐줄 수 있지만 불룩한 뱃살은 영 불편하다. 음식은 포기할 수 있지만 잠은 포기하지 않겠다. 나는 잘 자야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Unsplash의 Isabella Fisc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