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많고 답은 없고 나는 초조하고

2023. 11. 22

아이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닐 학교를 알아보고 있다. 둘째 아이는 다니던 초등학교를 다니면 되지만 큰아이는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 큰아이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혁신학교에 입학하고 싶어 한다. 초등학교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이미 그 학교에 입학 원서를 낸 모양이다. 나도 아이를 그 학교에 보내고 싶은데 통학버스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어 한국과 연락할 일이 많아졌다. 내가 근무할 학교의 복직과 관련된 일도 같이 처리해야 해서 세 학교와 연락을 주고받는 중이다.


한국으로 연락할 때는 시차를 고려해야 한다. 국제전화 요금은 비싸서 카카오톡의 보이스톡으로만 연락이 가능하다. 불편한 점이 많다. 업무 담당자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면 사전에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사적 인맥을 이용하기도 한다. 주로 나는 밤에 연락하는데 한국은 오전이라 업무가 분주한 상황이다 보니 담당자와 통화하기가 쉽지 않다. 잠을 자지 못하고 전화나 메시지를 기다릴 때도 있다. 한국의 학교는 답변이 빨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질문을 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시간이 초조하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특별히 내가 할 일은 없다. 그저 기다리는 것뿐.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는 일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규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나는 그 절차에 맞게 서류든 마음의 준비를 하면 된다. 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규정을 바꿀 수 없으니 그럴 때는 내 마음을 바꾸면 될 일이다.


아마도 내 초조함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이가 다니고 싶어 하는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면 어쩌나, 내가 원하는 날짜에 복직하고 싶은데 그게 안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아이는 그 학교가 아니어도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있고 나는 직장인이니 직장에서 정해주는 날짜에 복직하면 되는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늘 새벽에는 공부하는 줄 알았던 둘째가 유튜브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 자식 공부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가 성실하지 않은 모습을 보면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이가 뭐가 되려고 이럴까, 나는 어떻게 이 아이를 길러야 할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잠시 복잡했다. 나도 매 순간 성실하지 않았으면서 그것을 자주 잊어버린다.


요즘 가끔 불교 용어인 'karma'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업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이 용어는 현재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전생이나 과거에 내가 한 행위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내가 새벽에 깨어있는데도 버젓이 유튜브를 보는 둘째의 행동을 통해 학생이었던 내가 수업 중 선생님 몰래 딴짓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보는 친구를 통해 과거에 내가 누군가를 내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았나 하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만나면 내가 해결해 보겠다고 무조건 뛰어들었다. 시간을 들이고 감정을 소비하면서 빨리 그것을 내가 원하는 결과로 만들고 싶었다. 지금은 내가 한국에 있지 않으니 그렇게 할 수 없다. 칠레에서 바라보니 그런 상황이 보이면 일단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면 나중에 욕도 먼저 먹고 좋은 소리도 듣지 못했다. 불안함에 사로 잡혀 앞뒤 가리지 않았던 내가 떠오른다.


내 불안함을 지켜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초조하지만 그 감정에 휩싸여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답답하지만 기다리는 것이 최선임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먼저 나서서 먼저 매를 맞는 일은 이제 없었으면 좋겠다.



사진: Pixabay, Peggy und Marco Lachmann-Anke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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