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방학도 잘 보내자

칠레에서의 마지막 방학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거의 세 달을 아이들과 같이 보내야 한다. 당분간은 골프장에 가지 못한다. 잠깐 남편과 시장에 다녀올 때를 빼고는 아이들과 온종일 집에 있을 예정이다. 칠레에서 보내는 마지막 방학이고 기간이 길어서 1월에는 유럽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동안 남미 여행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자유 여행을 할 것이다. 무섭기는 하지만 기대도 된다.


아이들은 집에서 하루에 세 시간의 자율학습을 한다. 해가 지면 남편과 아이들은 공원에 가서 축구나 족구를 하고 온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수 없어 안타깝다. 아이들도 부모랑 하루 내내 같이 있는 것이 힘들 텐데. 아이들과 같이 있으니 잔소리가 많아진다. 남편과 번갈아가며 1층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운동하는 것이 나름의 자유 시간이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방에 책상을 가지고 가서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글을 쓴다. 내가 식사 준비를 할 때는 남편이 대신한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못마땅할 때가 많다. 남편도 그럴 것이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많아지거나 언성이 높아질 때면 괜히 불안하다. 공부 때문에 아이와 관계가 나빠질 것이 두렵고 꼭 이렇게까지 공부를 시켜야 하는 건가 하는 회의감도 생긴다.


학원에 보내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나와 남편은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이들의 실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의 공부를 지켜보는 나의 태도를 매 순간 확인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나의 불안을 아이에게 투사하고 있는지, 아이의 속도를 인정하고 있는지, 결과에 대한 부담감으로 아이들을 닦달하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본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보다 친절하게 알려주고 싶은데 잘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성공할 때도 있다. 내 마음이 편안할 때는 아이의 부족한 점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마음이 불안할 때는 아이의 사소한 실수도 커 보인다. 이 모든 것의 중심은 내 마음이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 미묘하게 거슬릴 때 얼른 나에게 돌아오라는 임경선 작가의 말은 옳았다.


오전에 둘째를 꾸짖은 남편과 이야기하며 나는 말했다.

"우리가 공부하면서 했던 시행착오를 아이들이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가 했던 실수를 떠올리며 아이들이 공부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이해해 주자."

남편은 내 의견에 동의했다.


아이들의 마음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공부할 때는 엄하게 대할 때가 많았다.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분명 나에게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 들었거나 또는 누군가로부터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신념이 아닐까.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는 게 기본값이라고 나도 어릴 때부터 세뇌당했던 것은 아닐까.


꼭 공부가 아니어도 된다고, 세상에 할 일은 많으니 보다 재미있는 것을 하자고 말하지 못하는 부모라서 미안하다. 사는 동안 매일 배우고 있다고 믿는 나는 공부도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지금도 절절하게 느낀다. 다만 공부든 무엇이든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아이들이 얼른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나도 아이들도 결과에 대해 기대하기보다 과정에 충실하자고 서로를 토닥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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