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추워진 날씨

2024. 3. 8.

칠레는 지금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있나 보다. 저녁에는 선선하다가 밤이 되면 추워진다. 생각 없이 베란다 창문을 열고 잤다가 이불을 돌돌 감고 잤다. 나는 추운 날씨를 싫어한다. 춥다고 느껴지면 자꾸 움츠러들고 마음도 황폐해지는 것 같다.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무기력해지지 않으려고 집에서 일부러 내복, 기모티셔츠, 패딩 조끼까지 입고 지낸다. 양말까지 신어서 찬기운이 몸에 스며들지 않게 한다.


칠레의 아파트는 한국처럼 난방이 잘 되지 않는다. 난방을 하면 천장이 따뜻해진다. 윗집 좋은 일만 시키는 것 같아 겨울이 되어도 아예 난방을 켜지 않는다. 아래층에 누가 사는지 모르지만 아이를 키우는 집이면 좋겠다. 그래서 난방을 자주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처음 칠레에 왔을 때가 겨울이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추웠다. 지금은 집에 전기난로가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것을 살 여유가 없어서 그냥 지냈다. 실내가 바깥보다 춥다는 것을 뼈가 시리게 느꼈다.


글을 쓰기 전에 얼른 옷을 반팔에서 긴팔로 갈아입었다. 이제는 몸이 불편해지는 것을 참지 않는다. 추우면 얼른 옷을 더 껴입는다. 그래야 마음이 평온해진다. 내가 게을러진 것인지 아니면 나를 배려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요즘은 무언가를 할 때 몸이 편한 쪽으로 선택하려고 한다. 칠레에 와서 머리카락의 길이가 짧아졌다. 머리를 감는 것도 말리는 것도 귀찮아졌다. 원래는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목덜미까지만 내려온다. 더 짧게 단발로 자르고 싶지만 잘못하다가 어느 영화에 나왔던 마동석이나 개그맨 최양락처럼 될까 봐 꾹 참았다.


몸보다는 마음에 더 집중한다. 몸이 편하면 마음도 편해지니까 몸을 치장하는데 쓰는 에너지를 가급적 줄인다. 화장은 안 한 지 3년이 넘었다. 남편은 나의 화장한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외출할 때 선크림만 겨우 바른다.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것을 보면 부럽다 못해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나에게 스스로 말한다. '동안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곱게 늙는 것에 더 마음을 쓸 거야!'


살다 보니 나의 못남이나 부족한 점도 받아들이게 된다. 빼어난 외모, 뛰어난 능력, 훌륭한 부모 등 내게 부족한 것들은 차고 넘치지만 어차피 앞으로 계속 나로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 그냥 인정하고 사는 수밖에 없다. 그것들에 맞서 싸울, 저항할 기력이 나에게 없다. 굳이 내가 가진 긍정적인 것을 찾으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찾기 힘들기도 하지만 찾는다고 해도 큰 위로가 되지 않는다. 요즘은 나의 속도대로 살겠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자주 한다. 나의 속도로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어제 러닝머신에서 걸으면서 나의 의지대로 걷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의지가 아니라 기계가 억지로 걷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잠시 생각했다. 나의 의지로 러닝머신에 올랐으니 그건 내 의지로 걷는 것이 맞다고 해야 될까. 헷갈리긴 하지만 오늘은 러닝머신에 올라 내게 가장 편한 속도로 걸어봐야겠다. 아마 어제는 나에게 좀 빠른 속도로 걷다 보니 힘들어서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느려도 괜찮다고 나에게 이야기하며 내게 편한 속도를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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