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Jun 28. 2024

칠레가 그리워

2024. 6. 28.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남편이 직장에 휴가를 내서 이삿짐을 정리하니 집 정리가 대충 마무리되었다. 나는 정리는 정말 못한다. 여행 가기 전에 짐을 쌀 때도 내가 가져갈 짐을 꺼내놓으면 남편이 가방에 차곡차곡 쌓는다. 남편이 없으면 나는 이사를 하고 여행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쌀통에 문제가 생겼다. 쌀통에 채워놓은 이십 킬로그램의 쌀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손으로 주워 담으며 생각했다. 내가 마음이 바빠지고 있다고. 한국에 온 것이 실감 났다. 칠레에 있었다면 집에 있는 남편이 얼른 달려와 해결해 주었을 것이다. 남편은 지금 직장에 있다. 나 혼자 전부 주워 담았다. 


살짝 외롭고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혼자 일하는 것을 싫어한다. 누군가가 같이 옆에서 해주기를 바란다. 남편은 직장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그래도 혼자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종종거리다 보면 문득 외로워질 때가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몸도 마음도 갑자기 바빠진다. 아이들의 간식을 챙기고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을 세탁하고 아이들의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과 같이 공부를 해야 한다. 짧은 시간 안에 나 혼자 모든 것을 하다 보면 마음이 급해져 갑자기 욱할 때가 있다. 오늘도 그랬다. 다행히 설거지를 하다가 얼른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 


지금은 직장에 가지 않으니 시간이 아주 많다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렇게 계속 적응하다 보면 직장에 다닐 때도 크게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미래에 가 있던 내 마음을 얼른 현재로 데려다 놓았다. 마음은 놀랍게도 속도가 빠르다. 순식간에 과거, 현재, 미래를 왔다 갔다 한다. 


'칠레'라는 나라가 그리운 것이 아니다. 한국은 정말 살기 좋다. 칠레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이 그립다. 남편이 늘 함께 있어 많이 의지했던 시간. 이제 다시 혼자다. 남편이 있을 때는 충분히 의지하고 나 혼자 있을 때는 다시 종종거려야 할 시간이 왔다. 나는 다시 외롭고 억울해질까.


한국에 오니 지인들에게 연락이 온다. 나를 잊지 않고 연락해 준 그들에게 고맙다. 시댁과의 관계도 시작되었다. 나는 자주 서운해질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기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서로 의지하고 살면서 기대하고 서운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새로 이사한 집에서 보낸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살던 집을 팔아버리고 앞으로 전세살이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이사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이 결심을 지키는 사람이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내일은 시댁에 맡겨 놓은 짐을 찾으러 다녀와야겠다. 정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에서 쓰는 첫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