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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Jun 25. 2024

한국에서 쓰는 첫 일기

2024. 6. 25.

한국에 온 지 11일째다. 한국에 오자마자 나는 시댁으로 갔다. 이유는 단 하나다. 시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는 평수가 넓어 더부살이하기에는 딱이다. 칠레에 가기 일주일 전에도 나는 시댁에 머물렀다. 여러모로 시댁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시댁에서 지낸 일주일은 정신이 없었다. 시차 적응을 하기도 전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시댁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시누이들, 시누이들의 남편, 그들의 자식까지 와서 밥을 먹고 가고 반찬을 가져다준다. 사람들을 한꺼번에 많이 만난 나는 피곤하고 지쳤다. 


한국에 도착해서 집이 없던 우리 가족은 편안하게 먹고 잘 수 있는 곳이 있어 좋았다. 이런 시댁이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다. 시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은 맛있었지만 불편했다. 아마 미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감사함이 지나간 자리에는 서운함이 차올랐다. 시어머니의 말이 한 번씩 나를 자극했다. 결론은 항상 똑같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어!'


한국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벌어지고 있다. 엄마가 전화를 했다. 엄마의 휴대전화 번호를 수신 거부해 놓은 상태라 나는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받고 싶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같이 지낼수록 엄마에 대한 원망이 커져가고 있었다. 자신의 딸이 아닌 나에게 이렇게 다정한 시어머니를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엄마와 시어머니를 비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시어머니가 늘 좋은 것은 아니다. 가끔은 나를 아들의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위한 도구로 대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지난 토요일, 비가 오고 있음에도 나는 이사를 했다. 남편의 출근으로 인해 이사를 더는 미룰 수 없었다. 가장 절실한 이유는 시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시어머니가 아무리 잘해주셔도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일 뿐이다. 적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원만한 관계를 위해 좋다. 짐을 풀기도 전에 남편은 근무지로 가서 주말에 온다. 나 혼자 남은 짐들을 대충이라도 정리하느라 어제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간 줄도 몰랐다. 오늘에서야 한숨 돌렸다. 제대로 된 낮잠을 잤다. 


칠레에서 살던 집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짐을 싸면서 이사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에서 한 번의 이사를 더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나이가 들었고 체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기억력도 떨어졌다. 다이소에 물건을 사러 가면 꼭 하나씩 빠뜨린다. 메모지에 적어서 들고 가야 한다. 오늘도 마트에 들렀다 필요한 물건 하나를 사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학교에 무사히 안착했다. 나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안착할 것이다. 이제는 도망갈 곳이 없다. 한국에 돌아오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 빠른 행정처리, 친절한 서비스는 물론이고 두려움 없이 외출할 수 있다. 필요한 물건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다음날이면 도착한다. 세탁기와 냉장고를 배송해 주시는 분이 설치까지 완벽하게 하고 간다. 다이소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다. 내가 마시고 싶었던 아이스 바닐라라테도 마실 수 있다. 


일기 쓰는 일을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 브런치스토리에서 알림이 왔다. 선생님께 혼난 학생의 마음으로 주섬주섬 노트북을 챙겨 꾸역꾸역 글을 쓰고 있다. 쓰고 싶은 글은 많지만 아직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다. 짐 정리를 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서 글을 써야겠다. 그러다 보면 내가 그리던 평온한 일상에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이 어느새 나의 평온한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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