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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Jun 11. 2024

이제 떠나고 싶어

2024. 6. 10.

요즘은 잠이 오지 않는다. 집에 있는 가구와 가전제품을 다 팔아서 아무것도 없다. 침대도 없어서 오늘부터 이틀 동안은 방바닥에서 자야 한다. 칠레에 사는 남편의 친구가 우리가 쓰던 식탁을 가져간다고 해서 그것만 남았다. 그 친구는 떠나기 전날 먹을 것이 없을 거라며 우리 가족을 집에 초대했다. 칠레에 처음 왔을 때부터 칠레를 떠날 때까지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한다.


한국에 가면 가장 먼저 미용실에 갈 것이다. 나는 흰머리를 염색해야 하고 남편과 아이들은 단정하게 머리를 잘라야 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고 교육청과 학교를 방문할 것이다. 미리 주문한 자동차를 받아야 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무사히 보내고 나면 본격적으로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우리 가족이 살 집으로 이사를 한다. 일단 여기까지 무사히 진행되면 한국 적응이 완료된다.


이민가방에 우리가 가져왔던 짐을 다시 싸고 있다. 무게와의 전쟁이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많이 버렸는데 지인들의 선물을 사느라 무게가 늘었다. 돌아갈 때는 가볍게 돌아가고 싶어 비행기에 수화물을 추가하지 않고 최대한 가방에 넣어보려고 한다. 내일은 집주인이 와서 집을 확인하고 간다. 보증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몰라 초조하다. 칠레에서는 보증금의 절반 밖에 받지 못할 거라고 지인들한테 들었다. 과연 우리는 어떤 꼬투리를 잡혀서 돈을 뜯기고 얼마를 받게 될까.


내 마음은 이미 한국에 가 있다. 집이 엉망이다. 빨리 짐을 가방에 넣어버리고 싶다. 아직 이틀이나 남아서 밥을 해 먹어야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해서 짐 싸기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래도 칠레로 올 때보다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때는 칠레에서 무엇이 필요할지 몰라서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를 여러 번 했다. 지금은 대충 무게만 맞춰서 짐을 가방에 넣기만 한다.


일단 공항까지만 가면 된다. 중간에 미국을 경유해서 신경이 쓰인다. 빨리 대한항공 비행기에 타고 싶다. 비빔밥이든 뭐든 좋으니 한국인 승무원에게 기내식을 주문하고 싶다. 한국에 가서 편한 마음으로 밤에 길거리를 활보하고 싶다. 한국말로 마음껏 수다를 떨고 싶다. 시간이 빨리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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