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께

마지막 인사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글을 씁니다.


먼저,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고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단어를 고르는 노동까지 추가됩니다.


저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될지 고심하시던 선배 선생님과

기어이 저를 위로하겠다는 마음으로 따뜻한 말과 눈길을 보내주던 후배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성적 처리가 잘 끝나서 후련합니다.

2학기 시간표 작성까지 마무리되면 제 책임은 다한 것 같습니다.

더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입니다.

제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앞으로 삶에서 각자 져야 할 책임과 짐을 감당할 것이라 믿습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인과응보'는 제가 애쓰지 않아도 삶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일로 저는 살다 보면 최선을 다해도 체면을 구기고 구설에 오르는 일이 생길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남에게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일을 무기력감 없이 선선히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을 새삼 절감했습니다.


인사자문위원회 위원님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담임 임명을 미루는 결정은 제가 생각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덕분에 '배제'되는 느낌 없이 지금의 자리로 올 수 있었습니다.

'효율적인 행정 처리'가 언제나 옳은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것'은 때로는 더 깊은 숙고의 과정일 수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2학기부터는 가족과 함께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해외살이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을 겪어야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인가 봅니다.

학교라는 직장, 동료와 주고받은 사소한 농담, 학생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 급식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이 모든 결과를 알고 있는 채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그 선택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저다운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기에 제가 마땅히 겪어야 할 일을 겪으며 한 발 내디뎌 나아가보고 싶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열린 운명을 한껏 살아내보려고 합니다.


제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해 주었던 2학년 담임 선생님의 뜨거운 연대에 경의를 표합니다.

로 인하여 무거운 짐을 떠안은 김현아 선생님께 응원을 보냅니다.

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늠름한 마음의 전진을 이끌어 준 전교조 조합원 선생님께도 깊은 존경을 전합니다.

그들이 보여준 조심스러운 배려는 이 슬픔의 시대에 공동체가 익혀야 할 삶의 기술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에게 일어난 일을 몸과 마음으로 통과하며 슬픔에 처한 사람과 관계 맺는 법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가장 큰 공부였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선생님들의 건강과 평화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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