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파라과이 122일 차

2025. 12. 16.(화)

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소중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운동을 할 것이다. 그래야 많이 먹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다. 정년이 연장된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남편과 나는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일해야 하는지 계산한다. 20년 정도 더 일하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운동은 필수다. 남편은 회사에 출근해서 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퇴직하면 같이 재미있게 살자고. 운동하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이런 다정한 잔소리는 반갑다.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곱씹어보면 깊은 뜻이 들어있는 말이 좋다.


아이들의 키가 쑥쑥 자라고 있다. 더 잘 먹이고 싶다. 하루가 다르게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다. 뿌듯하다. 아이들의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해진다. 이상하다. 아이들이 잘 먹을 때 가장 행복하다. 나의 엄마는 많이 먹는 나를 질책했다. 엄마는 내가 많이 먹어서 잘못될까 봐 걱정되어서라고 했다. 나는 수치심이 있다. 타인과 음식을 먹을 때 의식적으로 먹는 양을 조절한다. 많이 먹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식을 많이 먹었던 시절은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애정이 고픈 시절로 기억한다. 먹어도 먹어도 속이 허했다. 채워지지 않았다. 교사가 되고 일 년 동안은 먹고 싶었던 음식을 사 먹느라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돈이 없어서 먹지 못했던 나에게 보상하는 것처럼 나를 먹이고 가족을 먹였다. 돈을 모으지 못했고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힘들게 살을 뺐다. 외모가 그럴듯해져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는 나는 늘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나는 가난해, 못생겼어, 성격도 좋지 않아. 내가 나를 싫어할 근거는 차고 넘쳤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다시 시작하는 마음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엄마 나이 15살,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내면의 아이도 잘 키워내는 것이 목표인 여자사람, 2년간 칠레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파라과이에 살고 있습니다.

17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30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2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파라과이 121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