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
겨울잠을 자고 일어난 것 같다(칠레는 여름이다). 일주일 넘게 누워있는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몸무게는 살짝 줄었다. 몸이 가벼워졌다. 아프기 전보다 몸에 기운이 없고 움직임은 더뎌졌다.
칠레에 오기 위해 한국에서 짐을 정리하고 이사를 했다. 일주일 정도 시댁살이도 했다. 시어머니와 남편의 눈치를 봐가며 평화롭게 준비하려고 노력했다. 칠레에 와서는 남편의 어려움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내 몸과 마음의 안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매일 세 끼의 식사, 청소, 빨래, 장보기와 같은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을 했다. 시간에 맞춰 바삐 준비할 때가 많았다. 힘든지도 몰랐다. 이것은 나의 의무이니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도한 노동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방학을 이틀 앞두고 내 몸과 마음이 이렇게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감기를 힘들게 겪은 적은 처음이다.
계획했던 페루 여행을 취소하고 혼자 많이 속상했다. 나 때문에 여행이 취소되었고 많은 돈을 위약금으로 냈다. 떠나기로 한 날 페루에서 시위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위는 계속되고 공항은 폐쇄되었다. 여행객들은 발이 묶였고 시위가 격해지며 치안이 좋지 않다는 소식까지. 급기야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아이들과 여행을 갔다면 위험할 뻔했다.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삶은 늘 이런 식이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금 좋은 게 나중에 좋은 게 아닐 수도 있고, 지금 나쁜 게 꼭 나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다시 여행을 계획했다.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그건 미래의 일이다. 지금은 여행을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차근차근 여행을 준비하는 것만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여기에서도 부모님을 자주 원망한다. 한국으로 갈 때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걱정을 자주 한다. 내 생각은 과거와 미래에만 머물러 있다. 그래서 우울했던 것 같다.
지금, 여기에 머무는 연습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자꾸 남을 의식하는 나를 좀 달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