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현모양처가 아니야.

나의 어둠을 받아들이기

현재까지 나만 코로나 생존자


남편이 코로나19 확진되었다. 큰아이가 제일 먼저 학교에서 감염되었고 자가격리 중 둘째도 감염되었다. 둘째의 격리 해제 4일 만에 남편이 신속 항원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둘째까지 격리 해제되자 나와 남편은 우리가 슈퍼 면역자인 것 같다며 기뻐했다. 그래도 난 의심했다. 남편은 편도도 잘 붓고 독감에 걸렸던 적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남편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불길한 추측도 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현재까지 나만 감염되지 않았다.


브런치, 블로그 등 글쓰기 플랫폼에는 코로나19 감염 경험, 코로나19 감염자를 돌봤던 경험에 대한 기록이 쏟아졌다. 감염자를 돌봤던 경험을 적은 글에는 가족을 위해 정성스럽게 밥을 차리고 소독하며 힘들었다는 내용과 가족의 소중함, 당연한 일상에 대한 고마움에 대한 내용들이 많았다.


오늘 아침, 나는 남편의 감염 소식을 듣고 절망했다. 화가 났다. 거의 3주 동안 병간호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남편의 도시락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등교하면 대청소 등 밀린 집안일을 다해놓고 잠깐이라도 나의 시간을 즐겨보리라 다짐했다.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써봐야지!'

애써서 준비한 도시락은 쓸모없어졌다. 아픈 남편을 두고 대청소를 하면 남편이 쉬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서 하지 않기로 했다. 예정에 없던 남편의 감염 소식은 나를 아픈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도 없는 악처로 만들었다. 화나면서 미안했다.


"나도 차라리 아파서 누워 있고 싶다! 벌써 3주째야!"

마음에 담아두었던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뱉어버렸다. 남편이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남편이 진료를 기다리면서 커피를 사 갈지, 내가 좋아하는 추어탕이 먹고 싶지 않냐는 등의 메시지를 보낸다. 식사 후 설거지도 자기가 하겠다며 나선다. 나도 마음이 불편해졌다.


일하다가 집에 있으니 나에게 돌봄의 역할이 강화되었다. '밥하는 자아'만 남은 것 같다. '엄마가 쉬니까, 아내가 쉬니까, 내가 쉬니까'라는 말이 우리 가족들 입에서 자주 나왔다. 내가 일을 하지 않으니 나에게 편하게 요구하고 더 요구해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가족 중 누구도 나에게 많은 요구를 하지 않았다. 문제는 나다. 내가 나에게 더 많이 요구했다. 집안일은 내가 전담해야 될 것 같고 반찬은 일하기 전보다 더 많아야 될 것 같고 남편에게 자유시간도 더 많이 허용해주어야 될 것 같았다. 때로는 버거웠다.


저녁 준비를 위해 잠깐 마트에 갔다. 따뜻한 국물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바지락을 사고 기운을 북돋워준다는 낙지를 사서 데쳤다. 애들과 남편이 맛있게 먹었다. 덜 미안해졌다. 그리고 아침에 보여줬던 옹졸함과 찌질함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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