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내용을 바꿨으면 좋겠어.

타인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방법

아이들이 제일 궁금한 식단


감기로 한 달 동안 고생하신 엄마와 통화했다.

"아프니까 서럽더라... 혼자 울었다!"

"나가서 추어탕 사 와서 먹었다"


엄마가 아프다는 것도 알았고 종종 전화도 드렸다. 당시에 나도 힘들었다. 아이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고 고열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차례로 돌보고 있었다. 엄마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무엇이 먹고 싶은지 질문하지 않았다. 그냥 괜찮은지만 물었고 괜찮다는 대답만 듣고 싶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니까.


가족들은 나에게 질문한다.

"오늘 저녁 뭐예요?"(끼니때마다 받는 질문이다)

"저번에 제가 말한 거 사셨어요?"

"청소 언제 할까?"

"도시락 반찬 뭐야?"

"아이들은 괜찮아?"

"병원에는 갔다 왔어?"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는 질문이다.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만 물었다. '나'에 대한 질문은 없다.


직장에서도 상사에게 질문을 받는다.

"그 공문은 어떻게 되었나요?"

"제가 저번에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직장 상사는 질문하듯 질책한다. '질문하듯 질책하는 방법'에 관한 연수를 받고 오는 것 같다. 내가 업무를 처리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해당 업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신속 정확한 처리만을 당부했다.


몇 년 전, 백혈병으로 투병했던 조카를 돌봤던 시누이는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말했다.

"나한테 전화해서 아이 상황을 묻는 것보다 나 괜찮은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 말이 더 좋았어"


가족의 갑작스러운 코로나19 감염으로 다른 가족들의 안부 전화가 잦아졌다. 통화 내용은 감염된 가족의 상태에 대해 묻고 니가 고생이 많겠다는 내용이 전부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최선의 격려와 위로였을 것이다. 통화를 하고 나면 뭔가 서운했다. 내가 원하는 질문은 그것이 아니었다. '너는 괜찮아?, 힘든 점은 없고?, 필요한 거 없어?, 뭐 먹고 싶은 것은 없어? 애들 말고 너...' 아무도 '나'에 대해 묻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남편이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대충 아무거나!라고 대답했고 외식 메뉴를 정할 때도 아이들의 의견을 따랐다. 그게 편했다. 괜히 내 취향을 고집하면 나중에 애들로부터 민원이 폭주한다. 그 민원을 처리하는 것이 더 고되다.


며칠 전, 가족들이 먹을 낙지를 사며 양가 부모님께도 가져다 드렸다. 신기하게도 그날 저녁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각각 전화하셨다. 낙지가 정말 맛있었다고. 고맙다고. 친정 엄마는 평소에 낙지를 좋아하고 시어머니는 요즘 시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고 계신다. 나는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드렸다.


타인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서는 질문의 내용을 바꿔야 한다. 타인의 마음에 공감해야 제대로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마음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마음에 대해 물으면 질문의 내용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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