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려고 그러지
남편 친구가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에게는 시누이, 남편의 누나를 친구가 직장에서 우연히 만났단다. 친구는 누나가 엄청 동안이고 예뻐서 놀랐다고 한다. 내 시누이는 총 3명인데 그중 큰 시누이의 외모가 월등히 예쁘다. 나도 인정할 만큼.
"언니가 예쁘긴 하지. 동안이고. 사람들 눈은 다 비슷한가 봐."
내가 말했다.
나도 어디 가서 예쁘다는 말을 좀 듣는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냥 40대 아줌마다. 그렇다고 외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이미 이렇게 태어나 버렸으니 예뻐지려고 애써봐야 소용없다. 나는 동안이 되는 것보다 곱게 늙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시누이가 예쁘다는 것을 인정했으니 이런 나... 괜찮지?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 안에서 불편함이 느껴졌다. 이것은 뭘까. 질투가 났나? 이런 느낌 예전에도 자주 느껴봤는데.
이것은 질투다. 예전 같았으면 시누이의 외모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드니 남에 대한칭찬을 들을 때는 그냥 맞장구 쳐주는 게 어른다워 보인다. 질투하는 모습은 뭔가 못나 보인다. 질투는 속으로 하기로 했다.
'시누이가 부럽네. 그 나이에 예쁘다는 말도 듣고.'
'그럼 나는 뭘 잘해야 되지.'
누가 나한테 시누이보다 못 생겼다고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시누이와 나를 비교했다. 뭔가 다른 것으로 시누이와 겨뤄서 승부를 볼 생각을 하고 있다. 시누이가 나에게 싸움을 건 것도 아닌데.
나는 칭찬이 그립다. 늘 칭찬과 인정이 고프다. 직장에 다닐 때는 힘들어도 누군가의 칭찬이나 인정이 있으면 갑자기 힘이 솟곤 했다. 이런 나를 이용하는 동료나 상사도 있었다. 가족들도 그랬다. 나를 칭찬하면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나에게 요구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칭찬과 인정의 노예였다고 말하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지금 직장에 다니지도 않고 한국에 살지도 않는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주부가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마치 매일 학교에 가는 학생에게 잘했다고 칭찬하지 않듯이. 어쩐지 여기에서 무기력하고 우울한 날이 많았다. 칭찬이라는 주사를 한 방 맞아야 엔도르핀이 확 돌았을 텐데. 이제야 알았다.
칭찬과 인정 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겠다. 내가 칭찬해주면 되지! 할 수도 있지만 내가 하는 칭찬은 별로 감흥이 없다. 그래도 어떡해. 나라도 칭찬해야지. 현재까지는 이것밖에 방법을 모르겠다. 왜 나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이 이렇게 많은 걸까. 안 배워도 되게 태어나게 해 주지.
어쩐지 오늘 하루종일 속이 답답하고 소화가 되지 않았다. 괜히 짜증이 났다. 나이가 이렇게 많아도 남을 질투할 수도 있고 남을 부러워할 수도 있다고 내가 나에게 말해본다. 누구나 자기만의 길이 있다고 했던 니체의 말에 기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