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같이 넓었던 당신의 마음”
넓고 잔잔한 바다 같은 그녀의 마음이, 세상의 뙤양볕에 마르고 말라
굵은 소금이 되었으리라
“최준용 일병 행정실로”
무서운 행정보급관의 그 답지 않은 낮게 깔린 목소리가 다소 불안하게 들렸다.
행정병이었지만 오늘은 때마침 뙤양볕 아래에서 무거운 서류박스를 나르고 있었던 터라 그 목소리에 대해 생각 할 틈도 없었다.
“충성, 일병 최준용,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행정반에 들어 섰다. 행정반은 시원하다 못해 서늘함 마저 느껴 졌고 오래된 에어콘에서 뿜어져 나오는 쿰쿰한 냄새, 평소보다 어두운 행정보급관의 표정은 평소와 달랐다.
“음... 준용아, 할머니께서 돌아 가셨다고 하는구나.”
나즈막한 그 한마디에 머릿속은 복잡해 졌다.
슬픈마음이 드는 동시에 나의 머리는 다소 멍청한 생각을 한다.
‘휴우, 일단 몇 일 은 쉬겠구나’
평소 할머니와의 유대관계가 얕았던 이 호로자식은 휴가를 받았다며 조금은 기쁜마음으로 동대구역 KTX에 몸을 맡긴다.
장례식장. 당신이 생전에 찍어두신 영정사진속 할머니는 옅은 미소를 띄고 계셨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뒤늦게 슬픔이 밀려 왔다.
“요이 왔나”
농사일로 햇빛에 평생 그을려 검은 얼굴, 곳곳에 흉터와 굳은살이 가득 한 거친 손으로 손자를 반갑게 맞아 주신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골에서 혼자 농사를 지으시며 생활하시던 할머니는 나의 이름 대신 마지막 글짜 “용이”로 불러 주시곤 했다.
어린시절, 나는 할머니가 싫었다.
할머니의 굳은살 박힌 거친 손이 싫었고, 볏짚과 먼지가 잔뜩 뭍어 있던 헝클어진 곱슬머리도 싫었으며, 동구 밖에서도 들릴 법한 시끄러운 목소리도 싫었다.
도시에서 성장했던 환경 탓일까? 주변 친구들의 할머니는 얼굴이 희고 말투도 점잖았다. 어린 마음에 어줍잖은 비교 하며 할머니를 더욱 미워 했는 지도 모른다.
“이거 무 봐라”
라고 말하시며 음식을 권하실 때면 긴장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네 구판장에서 간식거리를 구매해 두시곤 하셨는데 구비해두신 과자나 음료를 권해 주실 때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 맛이 변해 있기 일쑤였다. 직접 만드신 반찬을 권해 주실 때도 있었으나 음식들애 대체로 매우 짰다. 몇가지 음식들을 소개 하자면,
김치
익지 않은 생김치를 좋아하던 나를 위해 김치를 자주 담아 주셨는데, 집에서 담은 김치보다 색이 무척 진했다. 손으로 부욱 찢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새하얀 밥위에 올려 입안에 가득 넣으면!
‘!!!!!!!!’
짜다... 그것도 엄청.
입 속에서 까나리가 소금과 함께 탱고를 추는 동안 나는 재빠르게 물을 찾는다.
“엄마 물!!!!!!”
된장
또한 직접 띄운 메주로 된장찌개를 해 주셨다.
고기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된장찌게에 소고기를 넣으신듯 하다.
평소 정육점이 멀어 고기반찬을 잘 안해 주셨기에 기쁜마음에 커다란 소고기를 건저 입속으로 덥썩 집어 넣고 맛을 음미한다.
“아앜!!!!”
또 속았다. 된장이다. 그 덩어리가 소고기 일 것 이라는 나의 원대한 꿈은 한낱 사막속 오아시스의 환각임이 드러났다.
산적
그러나 할머니의 모든 음식이 짜고 맛없는 것 만은 아니었다.
명절이면 맛 볼 수 있는 할머니표 산적은 아직도 그리운 음식 중 하나이다.
감칠맛 나게 양념한 소고기, 쪽파, 맛살, 버섯 단무지를 손가락 길이로 잘라 사이좋게 꼬지에 꽂은 후
밀가루, 계란을 입혀 커다란 전기팬에 약한불로 지지면 맛좋은 산적이 완성된다.
갓 완성된 산적을 한입 베어 물면, 각 재료들이 입안에서 춤을추고 단무지의 상큼함으로 마무리되는 기승전결이 완벽한 음식이 된다.
영정사진 속 할머니께 절을 두번 올리고 군복에서 검은색 정장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고운 색의 한복위에 검은색 미소를 띄고 계신 모습이 가족사진의 그것과 같아 아직까지 할머니의 임종은 실감나지 않았다. 어딘가 혼이 빠진듯한 아버지의 표정과 고모들의 오열만이 할머니의 죽음을 확인 시켜 주고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군을 전역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둘 생겼고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문득문득 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헝클어진 곱슬머리가 생각 난다. 그녀의 짜디 짠 요리도.
그녀의 짠 요리는 나이로 인한 미각의 마비로 인한것도 아니오, 농사일로 유난히 굵었던 그녀의 손가락 때문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손자를 향한 넓고 잔잔한 바다 같은 그녀의 마음이, 세상의 뙤양볕에 마르고 말라 굵은 소금이 되어 음식 속에 내려 앉았기 때문이리라.
"요이 완나?" (용이 왔나?) 더이상은 들을 수 없는 당신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