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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Oct 24. 2024

펄럭이는 저 국기, 각 부분에 이름이 다 있답니다

국기를 이루는 각 부분의 명칭

버스는 한남대교에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본가에 들렀다가 LA 갈비며 열무김치며 어머니표 반찬을 잔뜩 받아서 집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앞으로 한 시간은 더 가야 하니, 뭐라도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없나 해서 외신 기사 제목을 훑었습니다. 기사를 몇 개 넘기다가 프랜시스 스콧 키 대교(Francis Scott Key Bridge)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버스는 다리를 위를 달리며 한강을 건너는 중이었습니다.


다행히 테러 공격 가능성에는 무게를 두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길이가 300미터가 넘는 스리랑카 선적(船籍)의 대형 컨테이너선이 추진력을 잃고 강물에 둥둥 떠다니다가 교량에 부딪혔던 사고였습니다. 볼티모어의 교통이 마비되고, 항만이 폐쇄되는 바람에 손실이 하루에 5,000만 달러나 발생할 거라고 하더군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의 텃밭인 메릴랜드에서 민심이 돌아설 게 두려웠는지, 연방 정부 예산을 쏟아부어서라도 다리를 신속하게 재건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재선 도전 의지를 꺾지 않았죠.


하지만 저는 페타닐 중독에 찌들어가는 도시가 다리 붕괴로 입을 손해 평가에도, 선거인단이 10명인 메릴랜드 유권자들의 표심 따위에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프랜시스 스콧 키'라는 이름만이 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버스는 한남대교를 빠져나와 꽉 막힌 강변북로를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브태니커 백과사전은 프랜시스 스콧 키(1779~1834)를 미국 국가인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의 가사를 쓴 변호사이자 시인이라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시는 그냥 몇 줄 끄적이는 정도의 취미였고, 본업에서 키는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잘나가는 변호사였는지 말해주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807년 전직 부통령이었던 애런 버(Aaron Burr)가 서부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했다는 반역 혐의를 받고 체포되어 온 나라가 떠들썩했습니다. 그의 동료 두 사람도 나란히 법정에 서게 되었는데, 키가 이들의 변호를 맡아 이 사건이 음모였음을 밝히고 무죄 판결을 얻어냈습니다. 이를 통해 유명세를 타게 되었죠.


키는 자신의 달변 능력을 국제적으로 떨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미국은 영국이 유럽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싸우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캐나다를 덥석 차지하려고 미영전쟁(1812~15)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재앙으로 끝나면서 유럽 대륙에서 프랑스의 기세가 꺾였고, 영국은 이제 미국을 손봐줄 여유가 생깁니다. 전쟁은 미국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미군이 캐나다로 진격하기는커녕 영국군에 수도 워싱턴 D.C.를 내주고 백악관이 완전히 불타버리는 치욕을 맛봐야 했습니다. 미국의 셈법이 틀렸던 겁니다. 이제 독립 국가로 갓 태어난 신생아 같은 미국이 '해가 지지 않는' 세계 최강국 영국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전쟁이 막바지로 향할 무렵인 1814년 9월, 메릴랜드 출신의 의사이자 키의 동향 친구였던 윌리엄 비언스(William Beanes)가 영국군에 붙들려서 군함으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영국 군함은 포토맥 강어귀에 정박해 있었는데, 결국 말솜씨가 가장 뛰어난 키가 나서서 친구를 구해와야 했지요. 키는 영국군 포로를 비언스와 교환하는 것으로 작전을 짜고, 제임스 매디슨 미국 대통령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존 스키너(John Skinner)라는 육군 대령을 데리고 배를 타고 적진으로 들어갔습니다.


키는 역시 시대의 달변가였던 모양입니다. 영국군과의 협상은 다행히 순조롭게 잘 끝났습니다. 비언스가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키 일행이 곧바로 군함을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영국군은 볼티모어를 점령하기 위해 맥헨리 요새(Fort McHenry)에 포격을 퍼부으려던 참이었거든요. 영국군 사령관은 두 사람에게 공격이 끝날 때까지 배 안에 머물라고 지시했습니다. 두 미국인이 도시로 돌아가면 영국 군함에서 보고 들은 정보를 발설할 수도 있잖아요.


멕헨리 요새에서 연주되는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


영국군의 함포는 장장 25시간 동안 쉴 새 없이 화염을 뿜어댔습니다. 키와 스키너 대령은 적함의 함교에 우두커니 서서, 조국의 요새가 폭격당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미국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요새가 버텨주길 마음만으로 응원했을 겁니다. 마치 다른 편 응원석에 웅크리고 앉은 축구 팬처럼 말이죠. 하지만 뿌연 포연(砲煙) 때문에 요새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키는 요새에 걸린 깃발에 주목했습니다. 영국군의 포격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지상 병력이 요새를 장악했다면, 깃대에 걸린 성조기가 끌려 내려가 영국군의 군홧발에 짓이기고, 그 자리에는 유니언 잭(Union Jack)이 걸렸겠지요. 키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참패로 기록된 블래던스버그 전투(Battle of Bladensburg) 때 전열 속에서 분루를 삼킨 적이 있습니다. 조국의 치욕을 다시 한번 목도하게 될까요?



아, 저기 성조기가 보이네요. 당당하게 바람에 펄럭입니다. 영국군의 포격은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났습니다. 포병의 화력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역시 보병이 진격하지 않고서는 거점을 점령하기 힘든 법입니다. 밤새도록 이어진 포격을 버텨낸 성조기가 대견해 보였습니다. 가슴이 울컥해졌습니다. 미친 듯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랬다간 애써 성사한 친구의 석방도 물거품이 되고 말 터입니다. 자신도 이 배에서 무사히 내리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는 조용히 주머니에서 펜과 수첩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시를 술술 적어 내려갔습니다. 미국 국가의 가사는 이렇게 전쟁통에 적진 한가운데에서 지어졌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제 생각으로 국기는 깃대에 걸려 바람 부는 데로 마구 나부껴야 위풍당당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국기가 더 돋보이도록 깃대의 부분과 관련한 규정을 마련해 두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특별한 예식 때 성조기를 게양할 때 나라 새(國鳥)인 흰머리수리 형상을 깃봉에 달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나라꽃(國花)인 무궁화가 깃봉으로 쓰이는 것처럼 말이지요. 국기와 깃대는 한 벌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참에 국기의 주요 부분 명칭을 정확하게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앞으로 국기를 묘사할 때 이걸 알아두면 참 편리하거든요.


국기의 각 부분 명칭 (출처: Terence Wise(1977))


1. 깃봉(Finial)은 깃대의 최상단에 위치한 장식품으로, 대개 금속 재질로 만들어집니다. 국기의 상징성을 높이기 위해 또 다른 국가상징물을 깃봉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나라가 깃봉의 형태를 법률로 정해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태극기의 깃봉은 "아랫부분에 꽃받침 다섯 편이 있는 둥근 무궁화 봉오리 모양으로 하며, 그 색은 황금색으로 한다"고 대한민국 국기법 제7조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2. 장식 끈(cords)은 깃대 상단에서부터 깃대에 감겨 있는 장식용 끈입니다. 국기의 중요성과 장식을 더하기 위해 사용되며, 특정한 의식에서 종종 보입니다. 군기(軍旗)가 대표적인데, 화려한 장식 끈이 깃대 상단에 달립니다.


3. 좌측 상단(캔턴, canton)은 국기의 좌측 상단(게양 부분)에 위치하는 작은 사각형 영역입니다. 미국 국기인 성조기(星條旗)와 중화민국(中華民國)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처럼 주로 별, 태양, 혹은 다른 상징을 포함하고 있어 국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4. 바탕면(field)는 국기의 전체 바탕을 이루는 부분으로, 국기의 주된 색상이나 패턴이 배치되는 곳입니다. 국기의 전체적인 배경을 형성하며, 상징적 색상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태극기와 일장기의 필드는 흰색입니다.


5. 바깥 깃면(fly)은 국기의 끝부분으로, 깃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부분을 가리킵니다. 바람에 휘날리는 부분이라 '플라이(fly)'라고 불립니다. 바깥 깃면의 길이는 국기의 크기와 비율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6. 너비(breadth)는 국기의 위아래를 잇는 너비를 의미하며, 폭이라고도 합니다.


7. 길이(length)는 국기의 좌우 길이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국기의 전체적인 가로 길이를 나타내며, 폭과 함께 국기의 비율을 결정하는 요소입니다.


8. 게양면(hoist)는 국기가 깃대에 고정되는 부분으로, 국기를 걸거나 내릴 때 사용하는 부분입니다. 국기에서 좌측 부분에 위치하며, 이 부분을 통해 국기가 깃대에 연결됩니다.


9. 안쪽 깃면(sleeve)는 게양 부분에서 깃대와 연결되는 소매 형태의 부분입니다. 국기가 깃대에 부착될 때, 이 소매를 통해 깃대에 국기를 고정시킵니다.


10. 장식 리본(크라바트, cravat)은 국기 아래쪽에 매달려 있는 리본이나 장식으로, 국기의 장식적 요소를 더합니다. 프랑스 군대의 전통적인 깃발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11. 깃대(stave)는 국기를 지지하는 막대 부분으로, 국기를 들고 있을 때의 전체적인 지지대를 의미합니다.


12. 물미(ferrule)는 깃대의 가장 하단부에 위치한 금속 링이나 장식입니다. 깃대가 닳거나 마모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참고문헌:


Marc Leepson. (검색일: 2024년10월23일). Francis Scott Key. Encyclopaedia Britannica.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Francis-Scott-Key

Jeanne T. Heidler. (검색일: 2024년10월23일). War of 1812. Encyclopaedia Britannica. https://www.britannica.com/event/War-of-1812

The impact of the Baltimore bridge disaster. (2024년3월26일). The Economist. https://www.economist.com/united-states/2024/03/26/the-impact-of-the-baltimore-bridge-disaster

Terence Wise. (1977). Military flags of the world in colour. Blandford Press.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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