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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Nov 11. 2024

야구에서 배우는 글쓰기, "내가 칠 공을 찾아라"

글쓰기는 나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기도 하다


흔히들 야구를 인생에 비유한다. '위기 뒤에 기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등등 야구팬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경험해 봐서 공감하는 말들이 우리 삶에 꼭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타자가 안타를 치려면 아무 공이나 쫓아다녀서는 안 되고, 노림수를 갖고 타석에 임해야 한다. 타자들은 자기 순번을 기다리는 동안 동료 선수들과 노닥거리면서 놀지만은 않는다. 오늘 선발로 나온 상대편 투수의 투구를 유심히 살핀다.


"오늘은 쟤 체인지업이 너무 좋은데. 저걸 건드렸다가는 끽해봐야 파울만 나오겠어."


대기타석에서 배트를 재면서 뭘 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하나를 머릿속에 넣고 들어간다. 그래서 초구에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으면 스트라이크를 하나 먹더라고 참고 견딘다. 그런 공은 괜히 쳐봐야 소득이 없다. 이제 막 자신을 위한 주제가를 부르기 시작한 팬들의 기운만 빠지게 하는 팝플라이(내야 파울 지역에 뜨는 공) 안 나오면 다행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블로그를 쓰기 시작하면서 조회수를 늘리려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잡다한 일에 방망이를 마구 휘둘렀다. 인도네시아에 화산이 폭발했다는 기사가 뜨면, 그걸 화젯거리로 받아와서 화산재가 얼마나 멀리 퍼졌고, 이재민은 얼마나 많이 발생했는지 적어서 일등으로 올리려고 했다. 남미의 어느 나라 교도소에서 집단 탈옥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로이터통신에 올라오면 그곳의 감방에 대해서 적어내기에 바빴다. 당시에는 기계번역의 수준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혹할만한 소식을 부지런하게 옮기기만 해도 블로그 조회수가 나왔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한두 해 그런 식으로 글 쓰면서 블로그 조회수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함을 깨달았다. '네이버판'에도 글이 올라가면서 하루 2~3만 조회수를 찍어보기도 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애드포스트 수익으로 달랑 500원이 나왔을 뿐이었다. 하루 조회수가 100명밖에 안 될 때, 내가 광고를 하나씩 꾹 눌러도 애드포스트 수익이 500원 나오는데 말이다.


이런 글쓰기가 작가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내가 화산 폭발이라는 자연 현상에 지대한 흥미를 느껴서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화산 폭발을 따라다니면서 유형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글을 쓴다면야 모를까. 조회수 늘리기에 중독된 탓에, 탐나는 공을 죄다 따라다녔기에 안타를 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인공지능(AI) 번역기의 수준은 대학원생이 아르바이트로 하는 번역 실력을 뛰어넘은 터라, 외신 기사를 무미건조하게 받아적은 글이 인터넷 공간에 넘쳐난다.




나는 지난달 '브런치'가 성수동에서 아기자기하게 차려놓은 《작가의 여정》이라는 전시회에 들렀다. 거기서 작가의 글귀를 하나 보고 잔잔한 울림을 느꼈다.


모든 것에 답하려고 하면 잊어버린다, 자신을


블로그에서나 유튜브에서나 과거에 내가 했던 창작 활동들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모든 것에 답하려고 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들. 내가 그다지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았던 것들. 바깥쪽으로 멀리 빠지는 공에도, 높게 들어오는 공에도 아무 생각 없이 방망이를 붕붕 휘두르다 보니 내가 어떤 공을 잘 칠 수 있는지조차도 잊어버렸다.



창작의 본질은 결국 쓰는 행위를 하는 주체이자 생각하는 주체인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데 있다. 글 속에서 내가 빠진다면, 인간보다 백배, 천배나 더 빠른 속도로 글을 쏟아낼 수 있는, 타격 기계나 다름없는 ChatGPT가 쓴 글을 이제는 이겨낼 재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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