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마더링 스타트업 프리그
'준'은 5월 2일 밤 꿈을 꿨습니다. 그때 이야기가 '준'의 페이스북에 올라와있습니다. 인용할게요.
아침잠 꿈에 얼마 전에 생을 달리 한 이건희 회장이 나왔다. 중학교 때 메두사 머리를 한 김정일과 가끔 튀어나온 옛 연인을 제외하고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몇 안되게 기억하는 꿈일 것 같다. 우연히 그와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나는 요즘 하는 일에 대해서 결론 한마디를 그에게 전달했다. 그는 관심이 있었는지 자리를 옮겨서 자세히 들어보자 했다. 꿈속에서도 결의에 찬 나의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창가 자리에 그가 자리를 앉았고 검은 책 두 권을 폈다. 이채롭게 그 책은 성경책과 불경이었고 그는 성경책의 주기도문을 읽고 있었다. 책은 세로줄로 쓰여있던 것 같다.
이때부터 나의 비루함은 시작된다. 연신 그 앞에서 굽신거리다가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를 시키며 카페 직원에게 '여기 회장님이 와계시니 어서 주세요'라고 채근했다. 음료 번호표가 517번인가, 정확하지 않는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517번을 부르지 않는 것이다. 그가 멋진 금빛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옆으로 다가가 '회장님의 1분이 엄청난 돈인데 빨리 나오게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내 얘기를 듣겠다며 흥미로워한 얼굴의 그는 이미 사라졌고 옆에 갑자기 두 사람의 검은 양복을 입은 아마도 비서진들이 나타나 나를 노려봤다. 나는 급기야 주방 문을 열고 들어가 굽신거리며 517번이 언제 나오냐고 물었다. 당당한 카페 사장님은 '순서를 기다리세요. 아직 십 분은 더 기다려야 해요.'라고 충고했다. 막막한 순간, 나는 눈을 떴고 그는 사라졌다.
그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있는 나 역시도 꿈에서 그의 모습을 보고서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재벌가와 연이 있는 사람들을 음성적으로 '피 튀겼다'라고 부르는데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직장생활의 평범성(banality)은 여기에 있다. 나의 직장생활은 추억뿐만 아니라 내 신체의 이야기이다. 10년 남짓의 생활을 빠져나오는 데는 그만큼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친구에게 그가 꿈에 나왔다고 했더니 어서 복권을 사란다. 나는 아직 삼성을 다니는 그에게 '니가 이건희의 반열에 오르나 보다. 예지몽이네'라고 덕담인 듯 아닌듯한 말을 남겼다. 꿈속의 다양한 상징인 성경책이니 아메리카노니 금빛 시계 이런 것들은 지금 나에게 이렇게 해석된다. 요새 일을 하며 하루에 두 잔씩 먹는 나의 일상품이 된 커피와 이미 무신론자가 된 나에게 무의식의 두려움으로서 성경책이, 가끔 명품으로 오해받는 36만 원짜리 내 손의 손목시계가 나의 참을 수 없는 욕망과 숨겨진 두려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럼에도 거추장스러운 삶은 계속되며 친구에게 복권과 부로서 나에게는 비루함과 평범함으로 보였던 일은 또 다르게 삶에 붙어있다. 아이가 젖을 먹고 게워낸다. 꿈이나 팔며 노닥거릴 시간이 아니다.
5월 2일에 페북에 글을 쓸 때는 몰랐는데, 다시 창업 스토리를 쓰려고 대화방을 찾아보니 스티브는 서류를 제출하고 예창패 일정을 "예상 일정 : 서류결과 (4/30), 발표자료 제출 (5/10), 발표 (5/17) 정도"라고 남겨놓았습니다. 이런 우연이 언제나 있는가 봐요. 꿈은 또 다른 사유의 지평이면서 욕망의 펼쳐진 상황일 수도 있는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겠네요. 이건희를 만나서 음료 대기 번호가 517이었는데, 예상 발표 일정이 5/17일 이라니요. 저도 꽤나 고민 혹은 고심했나 봅니다.
예상 일정을 남긴 것에서 떠올릴 수 있듯이, 예창패 서류에 합격했습니다. 꿈을 꾸기 2일 전, 4월 30일에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스티브가 주관처에서 온 문자 메시지를 카카오톡 프리그 채팅 방에 올렸습니다. 저녁 6시 15분이었네요. 저는 6시 40분에 지하철 3호선, 집에 가는 길에 확인했습니다.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 용케 자리에 앉아 안국역을 지날 때쯤이었습니다.
스티브: (서류 합격 문자 텍스트 공개)
준: 오. 오오오! 제가 쟈철이라 8분 뒤에 전화드릴게요.
스티브: 오케이(이모티콘)
준: 역시 오케이(이모티콘)
스티브: 다 너희들 덕분이다. 발표도 잘 준비해서 최종 합격 가자~
준: 축하주 한잔 하려고요.
엔리케: 오우 1차 통과네요. 축하 축하!
수 십만 회의 예창패 공지글 조회수에서 보듯이 높은 서류 경쟁률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제는 가장 어려운 관문은 역시 수 십만 회의 경쟁률보다 어렵다는 1.01:1의 경쟁률을 뚫는 것이었습니다. 예창패의 최종 경쟁률은 서류보다 높지 않지만 붙을 만한 사람들이 붙었을 테니까요. 꼼꼼한 스티브는 서둘러 사업계획서를 기반으로 ppt 발표자료 초안을 만들었습니다. 발표자료 역시 형식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세부 평가 지표도 정해져서 안내되었습니다.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발표 관련되어할 일을 나누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상 질문을 만드는 일이고, 발표 시간은 10분이며, 질의응답 시간이 길기 때문이었죠. 기술, 마케팅, 사업의 목적 등에 대한 다양한 예상 질문을 만들었고 대답과 방어를 위한 자료를 작성했습니다.
엔리케: 형 모의 발표 연습 안 해보실래요?
엔리케의 제안으로 모의 발표 연습도 진행되었습니다. 준은 함께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엔리케의 평도 좋았습니다. 발표 자료 제출 종료 날까지 스티브는 발표 시간에 맞추어서 리허설을 진행했고, 시간 체크해보니 11~12분 정도가 되어서 마지막으로 자료 수정에 들어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스카이프 영상통화로 발표가 진행되기 때문에 대본을 세밀하게 써서 읽는 방식으로 발표 전략을 잡았습니다. 총 OO명의 선정인원에 발표 팀은 몇 배수의 수준이었습니다. 몇 배수는 역시 중요하지 않습니다. 경쟁력이 있는 곳에서 삐끗하면 탈락할 수 있기 때문이죠.
5월 17일이 아닌 5월 18일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프리그 멤버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 였습니다. 준은 인사팀 경력 때문에 가끔 면접이나 자기소개서 관련된 멘토링을 진행할 때가 있습니다. 항상 얘기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고민해야 된다. 내가 할 수 없는 취업의 의사결정, 면접관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일까 등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내가 준비한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그게 말만큼 쉬운 것은 아니네요. 최종 합격자 발표는 5월 말 예정되어있습니다. 그때까지 서로의 자리를 지킬 뿐이었습니다.
그날, 다시금 K-startup 사이트를 접속했습니다. 오후 4시가 지났을 때일까요. 공지가 떴습니다.
예비선정 명단이 뜨고, 중복 지원 등 부적격자 확인 이후 6월 2일에 최종 안내가 난다고 합니다. 예비 선정 명단의 스크롤 바를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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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X브(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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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었습니다. 하..
창업스토리 06: 한걸음 평지를 걷다가 한걸음 비탈을 올라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