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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윤곽이 생겨난 이야기_김유림

하루 시집 한 권, 시 읽기

윤곽이 생겨난 이야기 / 김유림


이런 접근은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그는 앞으로 갔다가 군중에 섞이게 되었지만 뒤로 갔더니 군중이 아니게 되지는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야? 짜증을 내어도 생긴 일이 생긴 일에서 생기지 않은 일이 되지는 않는다. 그에게 오늘은 선명했다. 해가 뜨고 새가 날아서 새가 날아가니까. 


 동물원은 빛이 바랜 것처럼 느껴지지만

 동물원은 동물원이었다. 


 에...... 이 돌로 말할 것 같으면 


손에 들린 돌이 이상한 빛을 내는 걸 본다. 빛은 돌에 붙어 있지 않고도 돌과 하나지만 돌과 하나인 것만도 아니다. 그는 시선에 따라 동행하는 표면을 읽는다는 둥의 헛소리를 안내인에게서 전해 듣는다. 누구에게서?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연못 구경을 끝내고

집으로 간다. 한 달 전에 


돌은 거칠고 암석이었다. 그러니까 돌은 돌이고 암석이었고 이끼도 조금 있을 법한 눅눅한 표면이었다. 또 말하고 싶다. 돌은 다른 돌과 구분되지 않아서 더더욱 사랑스러웠다고. 그가 지어내는 돌과 새와 귀갓길 이야기는 참말 멋지다. 나는 오래도록 그의 친구이고 싶다. 괜찮다면? 나의 눈빛을 건물의 표면에서도 읽어낼 수 있는 건 간판이 매끈하기 때문이고 간판을 지나가며 나와 그가 안심하기 때문이다. 안심 속에서 특이하고 쓸모없는 관찰이 피어났다. 


 정다운 혼선에 덧붙여

 즐거웁게 


작별을 고했으나 곧바로 밖이었다. 거리를 되짚으며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다니면 돌이나 돌의 표면에 가까워서 지금에 와서도 만질 수 있다. 




언어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고유명사가 그나마 대상을 특정할 수 있지만, 그 대상은 어디까지가 대상일까? 나라는 몸은 어디까지라고 할 수 있을까? 언어가 결국 지시하고 있으나 지시대상과는 다르다. 시가 언어의 정수라고 한다면 시인은 이 시가 담긴 시집 [별세계]를 통해서 세계와 둥둥 떨어져 있는 언어의 별을 계속적으로 그려내고 싶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방식은 통상에서 비껴 나기이다. 수많은 시 중에서 이 시가 가장 쉽게 시인의 의도를 드러냈다고 나의 언어로는 판단했다. 


 제목부터 '윤곽이 생겨난 이야기'라고 한다. 대상의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지칭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그렇다고 지칭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 겉은 속 자체가 겉을 포함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는 군중에 섞이게 되었지만 (빠져나가려고) 뒤로 갔더니, 원래는 빠져나왔다 정도겠지만, '군중이 아니게 되지는 않았다'라고 한다. '비가 온다'라고 쓴 뒤에 비를 모은 물이 떨어지는 것을 '비가 떨어진다'라고 하면 맞지도 틀리지도 않는 것이다. 물이 내린다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언어는 그 표현내부에서 계속된 외부를 생산하게 된다. 


 동물원이 나이가 들어서 가면 혹은 연식이 된 동물원이 빛바랬다고 도 하지만, 여전히 그 전체 개체는 동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시인은 동물원이 아닌 '빛' 곧 윤곽을 드러내는 것으로 집중한다. 칸트가 말했던 인식의 한계라는 곧, '자신이 보고 있지 않을 때, 세계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는가?'의 의문에서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비판하며 '이성의 한계'를 증명해 냈듯이, 빛을 비추는 돌 하나로 시선을 돌린다. 돌에 빛이 비치는 게 아니라 돌이 이상한 빛을 낸다고 한다. 여기서 빛은 돌과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윤곽이며 사건이 된다. 

 

 다시금 시인은 여기서 '돌'을 암석과 구분하고, 돌 또한 그 '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그 구분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밋밋한, 이름 없음에 대한 사랑스러움을 말하고 있다. 그것을 새롭지 않고 오래됨의 '안심'으로서 쓸모없음으로써 하찮음으로써 피어난 관찰로 써낸다. 어떤 특별함보다 흔한 것, 지금 굴러다니는 모든 돌이 그것인 것처럼, 그 윤곽에서 생겨난 이야기 속에서 보편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피식 웃는, 잠깐 지나치는, 그 찰나가 영원보다 소중할 때 시는 생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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