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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입속의 물고기_고영민

하루 시집 한 권, 한 편 읽기

입속의 물고기/고영민


입속에 새끼를 넣어 키우는

물고기를 보면서

식음을 전폐한 채

입속에 새끼를 넣어 키우는

물고기를 보면서

내 입이 어쩜 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주름이 한쪽으로 몰린

잘 씹지 못해 오물거리는

혼자 중얼거리는

노모의 입이 어쩜 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다 자라고 나서도

위험을 느끼면 재빨리

입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리는 물고기처럼


숨겨주는 물고기처럼


공복이 무성한, 


오래 저무는 노모의 입속에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시는 선명해야 한다. 사물에 기대어 써야 한다. 언제나 듣는 이야기, 설명이 필요 없는 선명한 장면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발상 때문일 것이다. 어딘가에서 들어봄직한 자연의 현상 '새끼를 넣어 키우는 물고기'를 인간에게 적용했다. 그러면서 '내입이 어쩜 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성찰을 한다. 그리고 노모의 주름진 입으로 옮겨간다. 잘 씹지도 못하고 혼자 중얼거리게 된 것은 나의 탓이 아니었을까. 아무 때고 바라고 언제나 부탁하는 나 때문은 아닐까. 3연에서 그대로 드러내 준다. '다 자라고 나서도', '입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리는' 나와 다시금 '숨겨주는' 노모이다. 

 이제는 저물어가고 있으나 은근히 남아있는 엄마의 입 그 속에,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자식이 있고, 삶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대며 머물며 금세 떠나는 자식이 있다. 군더더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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