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 나브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시나브로] 눈물의 형태_김중일

하루에 시집 한 권, 한 편 깊이 읽기


눈물의 형태/김중일


언젠가 식탁 유리 위에 한 줌의 생쌀을 흩어놓고 쇠젓가락으로 하나하나 집으니 어느새 눈물이 거짓말처럼 멎는 거야 여전히 나는 계속 울고 있었는데, 마치 공기 중에 눈물이 기화된 것처럼


그런 이야기를 하며 또 너는 운다

나는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쇠젓가락을 가지고 네 맞은 편에 앉는다

그리고 쌀알처럼 떨어진 네 눈물을 아무 말 없이 하나하나 집는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의 형태라는 듯


실제로 지금 우리가 오랜만에 만난 이곳은 너의 '시' 속이어서 그런지

너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마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듯

식탁 유리에 닿기까지의 짧은 순간

단단하게 결빙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닥에 닿는 순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게 산산이 깨져 먼지처럼 흩어진다

마치 누가 언제 울었냐는 듯


눈물은 처음에는 고체 형태다. 달궈진 눈두덩이에서 녹으며 잠시 액체가 된다. 그때 소량은 기화해 흐느낌의 형태로 공기 속에 스며든다. 공기 속에 스며들면 생기는 최종 결정이 먼지다. 지구상에는 그 무엇보다 먼지의 개체수가 가장 많다. 그 모든 것이 결국 먼지다 - 시작 메모


콩자반처럼 까만 너의 눈동자에서 퐁퐁퐁 솟아난 눈물이

마르기 전에 먼지가 되기 전에

젓가락으로 모두 집어 먹을 수 있을까

흰밥과 미역국을 앞에 놓고 앉은 너의 눈동자 안에는 시곗바늘이 대관람차처럼 돌고 돈다

한 칸 한 칸 탑승하고 있는 눈물들이 눈동자 밖으로 무사히 하차할 수 있도록 최대한

천천히 돌고 돈다


지구가 너무 아찔하게 높아서, 뛰어내리기를 매일 실패하는 해와 달처럼

네 눈동자 속의 대관람차에 승차한 내 시선은 미처 내리지 못하고

네 기억의 가장 슬픈 꼭대기로 더 없이 천천히 올라간다


그동안 웃음에 가려져서 못 살폈던 너의 풍경들을 세세히 다 보라고

지평선이 지는 해까지 데리고 멀찌감치 물러나 있다


 눈물을 닦아주는 이가 아니라 함께 우는 사람이 필요하다. 보살핌을 받기보다 그저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 '상상'은 시에서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그 상상이 상황을 은유하며 위로까지 해준다면 얼마나 시다운 일일까. "쇠젓가락으로 쌀알을 집는" 일이 사실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눈물이 멎었다는 것"도 사실 일 수 있다. 울고 있는데 눈물이 기화됐다는 것부터 상상은 시작된다.

 또한, 그 이야기를 듣고 함께 쌀알을 옮기는 일을 했던 것도 사실일 수 있다. 그러면서 장면은 상상이 증폭된다. 식탁 유리에 닿기까지의 짧은 순간, '결빙'이 되고, 바닥에 닿는 순간 운 사실도 있을 정도로 '먼지'로 흩어진다. 여기에서 시인은 나름의 논리를 갖춘 상상을 한다.

 눈물이 흐르는 이유는 슬픔 혹은 기쁨, 피곤 등의 감정으로 눈 주위가 벌게지기 때문인데, 이때, 액체로 떨어지고 슬플 때 특히 흐느낌으로 눈물이 조금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공기 속으로 나머지 것이 스며들면 결국 먼지가 되는데, 모든 것이 먼지라면 모든 것이 눈물이다.

 눈동자에서 떨어지는 눈물, 이 눈물이 계속 떨어질 때 쌀알을 줍던 나처럼, 먼지를 헤아리기 전에 너의 눈물을 잡으려고 애썼던 나처럼 나는 계속 나일 수 있을까. 나는 너의 눈물을 잡아먹을까, 눈물을 흘릴 때마다 곧 곁에 있을 수 있을까. 눈동자를 빗대어 같은 빛깔의 흰밥과 미역국을 드러내며, 대관람차에서 돌고 돌다 혹은 참다 참다 내리는 사람들처럼, 눈물을 기다린다.

 '네 기억의 가장 슬픈 꼭대기'는 대관람차의 가장 천천히 올라가는 곳이며, 지구에서 상당히 먼 해와 달의 거리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눈물을 기다릴 시간도, 기다림조차 잊을 시간도, 겉 웃음에서 속 울음으로의 지켜봄도, 해마저 지평선을 멀리하게 함도 알아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 시의 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나브로] 투숙_이수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