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별법
왜 사용자가 발의하면, 노동자가 증명해야 하는가?
52시간 예외에 대한 장기간 노동과 휴식의 집중근무제에 대한 노동계의 입장을 명확히 밝혀달라는 이재명대표의 말은 상당히 합리적으로 읽힐 수도 있으나, 노동계가 주저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찜찜함은 어쩔 수 없는 몸의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삼성서 직장생활 10년하고 나서도 바깥에서 10년 프리랜서로 일을 해도 남아있는 몸의 감각은 기시감처럼 그림이 훤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고개를 가로 젓게 된다.
왜 예외를 발의한 재계는 실제로 노동계에게 변화사항에 대한 당사자 논의를 하지 않았는가? 이재명대표가 말한 것과 달리, 어떠한 요건이 있는지 제안할 생각조차 안했다고 볼 수 있다. 재계는 그저 입법기관의 승인을 받고, 직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제도로써 실행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재명 대표가 '근로시간을 연장하자는 것은 아니죠?'라는 질문에 어리둥절하면서 말끝을 흐렸을 것이다.
왜 취약성있는 노동계는 그 제안에 대한 역제안을 해야하는가? 왜 내가 원하지 않는 제안에 그것이 노동 착취와 과노동이 될 수 있음을 매끈한 용어로 증명해야 하는가? 땀흘리는 노동자가, 노동법을 공부하고 미국, 대만, 일본의 비교연구를 통해서 그 차이까지 도출해줘야 하는가? 어쩌면 이번 토론 참여자들의 목표가 상이하기 때문에 아쉬웠다. 재계와 노동계는 52시간 예외를 막냐 뚫느냐의 뾰족한 지점만 생각했는데, 정치권은 그것이 아닌 요건을 얘기하자는 점, 협상을 위한 세밀한 안을 생각했다는데 큰 차이가 있다.
협상할 생각이 없는 두 주체에 정치권이 심판을 보듯이 균형감을 갖추려고 했지만, 노동계에게 현 노동 현상에 대한 해석과 판단, 대안까지 요구한 것도 무리이고, 재계 또한 어떠한 설득 논리나 늘어날 노동시간 대비 처우를 준비하지 않았다. 그저 52시간 예외 처리 통과만 원했다. 통과가 된 뒤에 따바따박 따져들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며, 노동자에게 '이렇게 하면 안되요, 이건 되고 저건 안되요, 여긴 미국이 아니에요, 한국이에요' 이런 압박을 했을 것이다. 제대로 의제설정이 되지 않는 토론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노동 시간을 늘리지 않는다는 제한, 그 자체로도 의미는 있으나, 그것은 토론할 필요가 없는 사항이었다.
적어도 예외처리라는 뒷문을 마련한다면, 재계는 미국의 제도와 같이 52시간 근무상한을 없애고, 포괄임금을 제외하고, 주40시간 넘는 근로시간은 추가근무수당을 지급하고, 관할청이 수시로 감독한다는 이야기를 끌고 나왔어야 했고, 그럴 자원도 충분히 있지만, 그런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려면, 지금 제대로 지급하고 있지 않는 야근 수당을 어떻게 하겠다던지, 복안이 있어야 한다. 3개월일하고 3개월 일 안한다는 집중근무 시에는 인사 평가는 어떻게 할 것인지, 불이익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비집중근무 인력에게도 설득해야 한다. 대신에 재계는 반도체 산업이 절체절명의 위기이니, 회사가 뒤쳐지니 희생해 달라며 위기를 가장한 협박을 방식으로 가지고 왔다. 어떤 나이브한 이들은 왜 그렇게 집중적으로 일하면 휴가도 길게 가고 돈도 많지 주지 않느냐며 의아하게 바라본다.
그간 한국인의 뛰어나고 근면스러움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개도국에서 선진국까지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이 한 조직과 산업에 있다. 글로벌 수준이 된 기술력은 글로벌 경쟁임을 의미하며, 처우와 조직문화 또한 그 수준에 맞춰야 됨을 의미한다. 여기까지 아주 특별하게 집중된 노력을 올라왔으니, 조금만 더 일해요. 그러면 글로벌 수준에서 더 앞서가요. 회사는 그렇게 되려면, '직원은 원래대로 일해야죠.'라고 강요한다. 그래서 '의심을 거두시고'라는 이재명 대표의 말은 역시 나부터 감정적 설득이 되지 않았다.
해외로 간 입사 동기의 이야기를 듣는다. '왜 그 안에서 그렇게 애썼는지 몰라. 바깥에 나오니, 이렇게 다른 세상이 있는 걸' 그는 16년을 삼성에서 보내다가 해외로 떠났다. 통상 연봉은 한국의 2배를 받게 된다. 지금 마이크론만 해도 경력이 높지 않은 엔지니어에게 한국 연봉의 1.2배 이상을 제시한다. 해외에서 그는 63년생의 하이닉스 출신 선배를 만났다. 테크니컬 어드 바이저로써, 해외 반도체 회사에서 그도 고액 연봉을 받으며, 기술자로써 삶을 이어나간다. 나도 그 덕에 63년생 엔지니어와 밥을 먹었는데, 기술하나만 벼렸더니 먹고 살만하다며, 작년에 놀고 올해 다시 어드바이저로 나간다고 한다. 그가 특별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그들 스스로 '외국노동자'라며, 옮겨다니기 귀찮아서 한국 들어가겠다고 한다.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애사심, 애국심에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된다고도 한다. 여기서 일 열심히하는게 혹시 한국에 도움이 안되면 어떡하지 라는 낮게 깔린 찜찜함이다. 지금 한국 반도체 산업은 그러한 노동자의 처우를 고민해왔고, 실력을 존중해 왔는가? 그리고 그 많은 이들은 대기업을 떠났거나 퇴직 이후에 한국 내에서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
그 찜찜함들이 피땀눈물이 되어 반도체를 비롯한 산업을 만들어 왔다. 왜 이리 강자에게 관대하고 약자에게 야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