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와 동시대
내가 처음 탄 비행기는 미국행이었다. 보스턴의 버거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프로그램에 등록을 했고 2004년 12월 말에 인천 공항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전혀 알지 못했고 미리 준비도 하지 않았지만 그때는 크리스마스 대목이었고 대부분의 비행기가 연착되었다. 나는 뉴욕에 도착해서 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가 당연히 연착이 되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 사람에게 "연착이 되었는데 전화 거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대답인데, 아주 차갑게 "I have no idea. It's none of my business.(모르겠어요, 내 일이 아닙니다)"라며 고개를 획 돌리는 것이 아닌가. 배가 고파서 공항의 버거킹에서 버거를 사 먹으려고 했는데 어쩜, 버거를 던지지 않나. 상당히 기분이 나빴었는데 긴장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물론 이후에 버거킹에서 일하면서 만나게 된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보스턴의 특성상 대서양을 건너서 입국한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과 나는 많은 정이 쌓이기도 했었고 내가 일을 마치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손편지를 쓰고 나오자, 내가 잠시 들릴 텍사스의 달라스 주소까지 - 아르바이트 비용을 받기 위한 Paycheck 주소 - 알아내서 선물과 답장을 주는 넉넉한 백인 아주머니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서구의 정치체제의 기원은 주로 홉스의 사회 계약설을 기반으로 한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서 사회를 정의했다. 서로 간에 무기를 내려놓고 무력을 사회적 대표자에게 위임하면서 생존권을 획득하고 그럼으로써 사회는 유지된다는 것이다. 소위 성악설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도 적절하지 않은데, 홉스의 사회 계약설의 기반에는 그 시절 데카르트를 중심으로 하는 이성 중심의 이원론, 과학적 법칙을 중심으로 하는 물리적 존재로서 인간을 대하고자 했다. 서구에서 국적은 국민에 앞선 한 인간으로서 인민(person) - 우리나라에서 잘 쓰지 못하지만 - 이 계약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개념에 가깝다. 동양에서 국가가 왕이나 황제와 동일시되며 신민으로서 수여받는 개념이 아니라, 군주와 인민이 안전권과 세금을 교환하는 계약을 통한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개념이 강하다.
홉스를 비롯한 계몽사상가들의 기반에 사회 계약설이 있었고, 그 또한 계몽사상은 르네상스와 맞닿아 있는데 르네상스는 신을 중심으로 했던 중세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의 인본주의로 돌아가자는 기치도 포함되어있다. 서구 유럽이 실제 기원전 2500년부터 민주주의(democracy)를 체계화했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 서구의 근대 민주주의는 모두가 알고 있는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혁명 등을 통해서 만들어진 18세기 이후의 산물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있었다고는 하나, 외국인과 여성, 노예를 제외하고 4주덕(정의, 지혜, 절제, 용기)을 계급에 맞게 발현할 수 있는 도시(polis) 남성에 국한된 체제였다. 그때에 모든 재산권은 가부장 남자에게 있었고, 남자는 가족들의 생살여탈권 - 죽이고 살리는 권리 - 를 독점하고 있었다. 그 외 기타 사항을 제외하더라도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투표를 하고 판결이 있는 등 그 제도로서 현대 민주주의와 공통점은 있으나 원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근대의 수많은 혁명을 통해서 조금씩 권리를 얻어가게 된 결과가 서구 민주주의 현재이다. 그것 또한 2차 대전 이후에 들어서야 투표권이 여성에게 부여되기도 한다. 여전히 계급은 유지되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을 포함해서 미국, 영국 등의 양원제는 귀족과 평민이라는 구분을 인정하는 방법으로, 예를 들어 미국 대통령 탄핵 권한은 하원에서 통과되더라도 상원에서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재 코로나 사태에 있어 '민주적' 절차는 곧 투명성, 개방성을 의미한다. 중국의 통제 방식과 달리 국가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국민에게 신뢰감을 확보하고, 그것은 국민의 자율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등으로 이어져서 상당한 방역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중국의 통제방식이 곧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이론적 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소련과 중국, 북한 등은 현실 사회주의에서 공산당 독재 방식으로 전환되어 그 밖의 다른 방식을 민주주의라고 부르고는 있으나, 민주주의의 반대를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것도 수정되어야 할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다른 국가들이 방역을 조기에 막지 못해 지역감염이 시작되고 판데믹의 조짐을 보였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폭동이나 사재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IT기술을 차지하더라도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상황은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
특히 독일과 영국 정치인의 말에서 정치체제와는 상관없는 서구의 특성을 보이기도 했는데, 메르켈 총리는 "60% 정도가 감염되어 면역이 생길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으며, 영국 존슨 총리는 "이제 더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 것이다"라고 했다. 현실적인 의료 한계, 지역 감염이 판데믹으로 확산된 상황을 막을 수 없다는 선언을 했는데, 사뭇 우리나라와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에 따라 민주적, 개방적 방법이 아닌 통제와 징벌적 처벌로 연결되었으며 대부분의 일상생활은 정지 상태로 흘러갔다. 그간 서구의 정치체제나 이데올로기는 프랑스혁명이 주창했던 자유, 평등, 박애 중에서 자유와 평등만을 저울질 해왔다. 그동안 박애(philanthropic)는 잊혀 왔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서구 근대정신에 반성이 일어났을 때 레비나스나 알튀세르와 같은 학자들이 환대의 개념 등으로 변용하여 지금의 시대는 자유와 평등의 저울질이 아닌 박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자유를 강조한 자유민주주의, 평등을 강조한 사회주의, 그것을 섞어서 사민주의 혹은 수정주의라고 했다. 그 사이에 인간에 대한 예의, 무한한 타자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라는 박애는 사라져 있었다.
도올 김용옥은 예전부터 민주와 민본을 구분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맹자의 왕도정치는 역성혁명을 중심으로, 민중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왕은 필요 없다며 민본이 중심이 되는 사상이었다. 춘추시대 공자가 어떻게 귀족을 교육할 것인가라는 사상을 전개했다면 더 폭악해진 전국시대에 맹자는 귀족이 아닌 어떻게 민중을 구원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했고 그 바탕에는 성선설만 단정할 수 없는 인간의 부끄러워함(수오지심)이라는 도덕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의 민주는 앞서 제시한 대로 그것과 달리 어떤 한정된 계급이 주권을 가져온 역사적 상황을 기반으로 하며, 주권이 기독교를 만나서 신성화되는 상황을 거치면서 실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윤리성이나 도덕에 대한 - 어쩌면 환대와 박애 - 가정을 없애며 쌓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서구 민주주의 및 시장경제가 동구권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승리를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역사는 없을 것이라며 [역사의 종언]을 썼던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라는 책을 썼다. 그는 현재 서구가 선진국이 된 것은 사회적 자본 때문인데, 이는 가족을 넘어선 공동체끼리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다. 서구가 가장 높고 일본이 서구의 사상을 받아들여 높은 편인데, 대신에 중국과 한국은 가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 자본이 낮아서 발전이 더딜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자본을 경제적 풍요와 연결시키는 인과관계의 오류도 오류이거나와 가족과 공동체를 구분되는 것으로 가정한 것도 비판받을 수 있다. 도올 김용옥은 가족의 강조가 "편협한 가족주의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도덕심을 함양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를 가족에서 찾은 것"이라며, 인간이 가진 사회적 조건을 적시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은 이미 상당한 철학적 비판에 직면해 있으며 사회적 자본이라는 단위로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환대와 박애의 힘은 여전히 위기상황에서 대단한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이 코로나 사태에 아울러 서구가 우리보다 못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민주적 절차, 민주주의라는 단어로서 풀이하는 데는 절차상 방법상으로 별 다르지 않은 우리와 서구의 상황을 조금 더 분석해보고자 풀이해 보았다. 그렇다고 서구의 모든 이들이 환대의 마음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작은 편지에도 감사해하는 백인 여성, 자연과 풀들에 감사하며 기부만으로 100년이 넘게 숙소를 운영하던 산티아고 순례길의 주인장,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데 나에게서 그런 냄새가 나니 참 좋다고 했던 아버지뻘의 남자 등은 인간의 보편은 존중과 환대가 아닌가, 사회가 나아갈 방향은 그런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인간성의 기본적인 발현을 위한 배려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기 몸을 던져서 대구로 달려갔던 수많은 의료진, 마스크를 다른 사람에게 가져가라며 글을 올리는 사람들, 혹시라도 자기가 감염되었을까 외국에서 돌아와 자가 격리를 선택한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환대의 마음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물리적 대책에 저변에 흐르는 사회를 또다시 구성해 나가는 든든한 버팀목이라 주장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