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와 동시대
중앙은행은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는 없다. 인간의 모든 조직과 행위를 동원해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의 탄생을 막을 수는 없다. 중앙은행 - 곧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 FRB 등 - 은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서 빨리 인지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내려야 한다. 왜냐하면 경제는 순환이기 때문에 어떤 한 영역에서 생산과 소비 활동이 멈추게 된다면 그간에 있었던 세계적 분업 시스템, 단위 국가 경제 운용 방식은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 리포트에 따르면 현재 코로나는 2008년 금융위기가 아닌 2001년 911 사태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문제는 금융 시장의 문제가 아닌 실물 경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911 사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 등장한 사건이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미국 시민들의 행동이 '멈추어'버린 것이다. 미국이 독립혁명과 건국 이후 - 나는 개인적으로 미국의 독립혁명이라는 말 자체가 참으로 미국, 백인 중심적인 단어로 생각한다 - 한 번도 본토의 타격을 받아본 적이 없다가 처음으로 물리적 타격을 입게 된 일이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에게 생각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인도주의적, 윤리적인 생각으로 간 것이 아니라 이슬람 혐오, 유색인종 혐오로 흐르고 파시즘적 형태로 적을 규정하는 - axis of evil(악의 축) - 네오콘들 전략으로 변모했던 것은 아쉬운 일이다.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 백신이 나와서 언제쯤 그 병을 해결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현재 큰 위협요인은 백신의 개발 여부와 시기도 있겠으나 코로나 자체가 바이러스의 기본 공식이라는 강할수록 덜 퍼지고, 약할수록 많이 퍼진다는 치명률과 전염도의 반비례 관계가 '2주의 잠복기'로 인해서 깨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사망률이 10%를 넘어가고 우리나라도 1~2%를 맴돌고 있다. 가장 치명적이라는 에볼라 바이러스는 너무 강해서 숙주가 금방 죽어버리기 때문에 지구 상으로 퍼지지 않고, 신종플루는 사망률이 영점 몇 퍼센트 정도였기 때문에 퍼지더라도 죽는 사람은 많이 없어서 풍토병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여전히 한 자릿수 이상의 치명률을 기록하고도 아주 빠르게 전 세계에 퍼지고 있는 것이 큰 문제이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국가 경제의 금융산업이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 이후 국가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금융의 완화 전략을 펼치게 된다. 하나는 양적완화이고 두 번째는 질적완화이다. 완화라는 말이 좋아 보이지만 둘 다 국가가 빚을 내서 돈이 돌게 하거나 위기를 맞는 경제 주체를 살린다는 방법이다. 양적완화는 주로 행정부가 국가의 채권을 사서 돈으로 바꾼 뒤에 그 돈을 경제주체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금융위기 때는 은행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은행에 주로 양적완화를 해결했다. 현재와 같이 실물 경제가 어려울 때는 사람들에게 재난 소득을 지급해서 소비를 일으키는 양적완화를 단행한다. 질적완화는 직접 부실한 회사채와 주식을 구매해서 그 가치를 유지시키는 전략이다. 대표적으로 일본이 하는 일이다. 일본은 국가 부채를 동원해서 망해가는 회사의 주가를 구매함으로써 좀비처럼 기업을 살려 놓은 것이다. 이러한 완화 전략은 기업을 망하게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살려 놓지도 못하는 전략이 아닌가 평가될 때가 많다. 만성 부채에 허덕이는 일본은 자국의 소비 지출이 줄어들면 국제 경쟁력 부족으로 지속적인 디플레이션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일본이 국가가 빚을 졌고 미국에서는 기업이 빚을, 우리나라에서는 가계가 빚을 지는 전략을 통해서 부채 경제를 유지해왔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건설사들이 아파트 단지를 지을 때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하는데, 건설사는 돈 한 푼 없이 건물을 지을 수 있다. 단지를 짓기 위해 부지 매입을 할 때 여러 금융사로부터 돈을 빌리게 되는데, 많은 금융사에서 서로 빌려주겠다고 난리를 친다. 왜냐하면 선분양제도를 통해서 금방 현금을 회수할 수 있고, 실제로 땅을 산 값이 가장 큰 건설비용이고 건물을 짓는 비용은 소규모에 불과하며 분양을 하게 되면 - 절대로 건설 원가를 공개하지 않는다 -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건설사가 얻게 되는 이익은 고스란히 높은 아파트 값으로 이어져, 이는 가계 부채로 연결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은행권의 채무 이행 시스템이 이자만 갚으면 되기 때문에 부채를 창출하는데 어려움이 없게 된다. 게다가 이러한 부동산 시장의 특이한 점은 거래비용을 제외하고 가치 창출을 하지 않는 가치 저장소일 뿐이다. 현재 기업들이 IMF 이후에 부채비율을 심각히 여기고 사내 유보금을 늘리면서 추가 투자를 하지 않아 돈이 돌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경제는 순환이기 때문에 부동산, 대기업 지원은 경제 활성화와는 전혀 다른 맥락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 상황은 '멈춤'이다. 멈춘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가장 접점에 있는 자영업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텅 빈 가게에서 월세를 계속 내는 사람들은 원래 가지고 있는 돈이 없다면 당장 위험에 빠지게 된다. 자영업자가 힘들게 되면 그것은 부채로 돌아가고 있는 부동산이나 임대업자들에게 큰 피해로 돌아가게 된다. 그들이 급해서 낮은 가격의 부동산을 처분하게 된다면, 자기 자본과 부채 중에서 자기 자본만 깎이고 총부채는 유지되게 된다. 자영업의 멈춤은 또한 고용의 불안으로 연결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적완화를 통한 경제주체의 지원은 무엇이든 해야 하며 신속함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연구에서는 '자본주의의 끝'이 언제 오느냐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예견하지만 현대 경제시스템에서 급격한 변화만큼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없다. 나도 집값이 어서 빨리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기대는 하고 있지만 급격한 집값 폭락은 사회 전체에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코로나 안정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앙은행과 정부를 비롯한 정책입안자들은 '시간'을 끌어야 한다. 백신의 개발까지 혹은 장기간 코로나 감염으로 집단면역이 될 때까지 말이다. 그러나 코로나의 여파는 멈춤이 시작된 이후부터 더욱 맹렬해질 것이다. 3월 초 주가가 곤두박질치게 된 큰 원인은 코로나로 볼 수 있으며, 이는 한 번 더 생각해본다면 자본주의 경제는 끝없이 성장할 것이라는 맹신 속에서 부채로 경제 활황을 가져왔던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2008년처럼 은행을 살린다는 것으로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 실물경제에서 미국은 천만 명이 해고되기 시작했으며 멈춤은 유가의 급락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시금 시간을 끌어서 폭락을 막고, 삶의 단절을 막으면서도 생각할 것은 성장에 대한 끝없는 갈망과 이를 위한 자본주의 경제 유지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이다. 사람들은 2008년보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국가의 대응이 아주 빨랐고 적절했다고 한다. 엄청난 돈을 풀어서 금융시장의 안정을 가져왔다. 물론 기업들의 실적이 발표되고 다양한 지표에서 빨간불을 일으키면 그 끝은 명확히 알 수 없다. 다시 들여다봐야 할 것은 자본주의의 부채경제가 아닌 일반 경제(general economy)이다. 일반 경제는 철학자 레비나스가 주장했었다. 그는 일반 경제를 사람의 먹고사는 일로서 말했다. economy는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 폴리스(polis)와 구분되는 오이코노미아(oikonomia)를 어원으로 한다. 가정 경제의 먹고사는 문제로서 오이코노미아를 말했고 도시의 남자들은 먹고사는 일이 아닌 크고 올바른 일에 전념해야 한다면서 그 시절에는 중요시하지 않았던 개념이다. 얼마나 오만한 일인가, 노예, 여성들이 희생하며 경제를 유지시켰던 것인데, 그것이 근대적 경제체제를 만드는데 등장했고 이제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레비나스는 '존재에서 존재자로'의 회귀를 목표로 한 철학자이다. 이는 하이데거의 '존재' 중심의 사유에서 전환을 요청한 것이다. 쉽게 얘기해서 하이데거는 인간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자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삶의 목표인 '존재'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서양철학에서 변화와 시간의 개념을 접목한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신, 이성과 다르지 않은 존재를 강조했다는 것은 관념의 세계에서 세상을 바라봤다는 맹점이 있었다. 굳이 연결시키자면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를 우리는 존경하고 있지만 그가 비판하는 소피스트들의 변명도 소중한데 철학에서 너무 잊어왔다는 것이다. 사유와 이성만 중시하다가 인간의 일반적인 삶인 합당한 가치를 인정받음, 배고프지 않음의 몸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레비나스가 강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몸'을 가진 인간이 존재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일반 경제'이다. 그것을 사회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의 시대, 다시 생각해볼 것은 어떻게 성장하고 다시 복원해서 발전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닌 얼마나 우리가 일반적인 먹고사는 것,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에 대해서 무신경했는가에 대한 일이다. 마스크를 통과해서 들어오는 축축한 공기 말고 상쾌한 봄 내음을 맡을 수 없는 현재, 사람들과 볼을 비비며 친근함을 표현할 수 없는 현재에 복원해야 할 것은 대푯값으로 여겨지는 경제가 아닌 작은 일에 대한 알아차림이고 드러나지 않았던 수고들에 대한 존중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