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와 동시대
페스트, 쥐의 잘못?
까뮈의 소설에서도 보듯이 페스트로 통칭되는 유럽의 흑사병 원인을 이탈리아 해안으로 들어온 배에 있던 '쥐'의 세균이 인간에게 옮긴 것으로 생각한다. 곧 페스트는 박테리아와 같은 세균성 질병이라고 통칭한다. 역사학자 수잔 스콧과 생물학자 크리스토퍼 던컨은 [흑사병의 귀환]에서 영국의 고립된 마을의 사료를 검색하고 생존자 후손의 생물학적 특성을 바탕으로 유럽 인구 1/3을 죽인 흑사병은 수인성 세균의 질병이 아니라 바이러스성 패혈증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유로는 흑사병이 3년 만에 북유럽의 아이슬란드까지 퍼지는데 근대에 들어서서 쥐가 아이슬란드에 나타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흑사병이 칭기즈칸이 퍼트리고 갔다거나 이슬람 세계에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동부 에티오피아에서 AIDS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창궐해서 지중해를 건너 넘어온 것으로 생각한다. 이유는 생존자 후손을 확인해본 결과 AIDS에 강력한 항체가 있었고 AIDS와 그 시절 흑사병으로 불리는 바이러스성 질병에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해당 학계에서 어떤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느냐는 팽팽하게 대립되겠으나 여전히 논쟁거리일 것은 분명하다. 흑사병 창궐이 시작한 1348년을 [근대 문화사]를 쓴 에곤 프리델은 그때를 '근대 인간을 수태한 해'라고 부른다. 흑사병을 통해서 신에 대한 의심을 하고 삶에 대한 의문점을 가지기 시작해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것이 그를 비롯한 흑사병이라는 서양사 최대의 재난과 인류의 재도약으로 불리는 르네상스의 연결지점이다. 우리나 어디서나 고진감래의 정신이다. 그 시절 문헌을 보면 흑사병의 원인이 천체의 운동, 인간이 오염된 대기를 흡입했다는 것을 포함하고 하느님의 분노가 본질적으로 봤다. 이슬람의 학자들은 지진이 유독한 증기를 분출시킬 때 전염병이 지구 내부에서 발산된다는 분석을 했다. 그 치료법으로는 남풍을 막기 위해서 낮에는 남으로 나는 창을 열지 말 것, 허브향을 피우거나 장미물을 받아서 씻으라는 처방을 내렸고 지금도 민간요법으로 쓰이는 피를 빼는 일 - 곧 사혈 - 을 하라는 방법까지 다양하다. 성욕을 자제하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성경이나 코란을 읽으라는 조언도 빠지지 않는다.
20세기 이후 큰 사건만 나열한 역사학자들에게 흑사병이 르네상스의 원인이라고 단언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의 흐름은 그렇게 명료하게 흐르지 않는다. 14세기부터 신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면 왜 아이작 뉴튼은 중력을 '신의 힘'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 앞선 갈릴레이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를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을까, 그 세계관의 그 시절 한계를 따지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불안전한 인간 혹은 사회가 무엇엔가는 의지를 해야 하는데 흑사병을 마주했을 때 무엇이라도 붙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것은 그 시절의 통념, 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은 21세기 지금의 우리나라이던 인도의 종교단체이건, 프랑스의 집회에서건 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쥐에 대한 편견도 20세기 생물학의 발달로 만들어진 인식론이라면, 그것의 반론이 21세기에 바이러스 감염이 제시된 것이고 흑사병 당시 시기에는 근대적 과학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신이나 지진의 탓으로 돌렸던 것이다. 그러한 불균형한 인식은 끝나지 않는 사유의 조각일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냉전이라는 전쟁의 서막
흑사병 시대에 유난히 유태인이 사망률이 낮았다는 기록이 있다. [바이러스의 대습격]에서는 유태인이 중세 유럽인들과 달리 종교적 의식에서 손을 깨끗이 씻었다는 생활습관이 있어서 사망률이 낮은 것인데 유태인은 예수를 죽였다는 유다의 후손이라는 것, 그리고 중세에는 사람들이 더럽다며 하지 않았던 '금전'에 관련된 일을 했다는 것으로 게토화 되어서 그때도 피박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그들이 디아스포라가 되어서 세계를 떠돌다가 2차 대전 종식 이후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땅을 승전국에게 부여받게 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웠고 그것은 중동전쟁의 서막이기도 했다. 승전국이던 소련과 영국, 미국이 세계를 다시금 이데올로기로 양분하기 시작했으며 차가울 것으로 생각했던 냉전은 실로 다양한 국지전의 시작이기도 했다. 여전히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 물론 자기의 이익에 가까웠겠지만 -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동수도가 아닌,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해버리면서 분쟁을 다시금 키우고 있고 그들은 여전히 끝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세계의 진보가 곧 기술과 학문, 교통수단의 발달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으나 인간의 인식으로 봤을 때 얼마나 하루를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과연 진보가 사회의 윤리를 나아지게 할 수 있느냐를 묻는다면 예전보다 지금이 더 발전되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이 글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을 어떻게 좀 더 편견 없이 볼 수 있느냐, 곧 판단중지(epoch)의 가능성이 인식의 진보라고 정의한다는 점이다. 판단중지는 신속할 수 없다. 내가 가진 편견과 다양한 인식론적 휴리스틱스 - 곧 다양하게 사유하지 않고, 빨리 판단하려는 경향 - 를 다시 생각하는 일은 시간이 걸리며, 그것이 몸에 익어서 사람을 대할 때 표현되게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서구에서 유태인을 생각하는 방식은 20세기 나치즘에 의해 극에 달했다. 소위 파시즘으로 불리는 국익과 공동체를 앞세운 체제는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잔존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나치가 폭거 하여 권력을 찬탈한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선거로 집권할 수 있었으며 나치의 시대에 처음으로 중산층의 개념이 생겼고, 여행이나 휴가라는 복리후생의 개념도 등장했다. 그리고 전쟁의 이유는 위대한 아리아인의 혈통이 살아남아 역사를 이끌어야 한다는 점이었고 몇몇은 게슈타포와 같은 나치군에 적극적으로 협력자가 되었고 대부분 이들은 암묵적 동의자가 되었다. 그 바탕에는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유태인, 동성애자, 장애인으로 정했던 나치의 선전술이 있었다. 문제의 원인은 열등한 그들이며 그들을 죽여야만 역사가 우생학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80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그저 사라졌다. 여전히 수용소 터에 가면 숨이 턱 막히는 긴장감과 우울감을 떨칠 수가 없는데 어떤 면에서 인간 인식이 가진 바탕의 두려움이 바깥으로 드러난 곳, 그리고 그 희생에 대한 공감일 수 있다.
나치 이후에도 공동체 우선의 국익중심의 사고는 국민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현재 강력한 캐치프레이즈 이기도 하다. 국익 중심의 사고는 자유세계의 대표적인 외교 전문가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에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을 종식했다는 이유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를 열었던 공이 있다고도 평가받는다. 대신에 베트남 전쟁 종식을 위해 무차별 폭격을 가하거나, 핵무기 위협을 했고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남미의 독재정권을 암묵적으로 옹호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구분되며 미국에서도 사형을 당해야 할 자가 미국의 외교를 호령한다며 비난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가 생각하는 '현실주의' 외교는 많은 미국인이나 소위 강대국 사람들이 그들과 국가를 동일시하며 갖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아직도 키신저는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아래의 키신저 사이트에서 WSJ에 기고한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전망하는 글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여전히 그는 자유세계, 국익이라는 단어를 서슴지 않고 활용하고 있다. 역사학자 토니 주트가 [20세기를 생각한다]에서 20세기는 한마디로 '자유주의'의 승리라고 단언한다. 자유라는 단어는 힘이 있는 자의 의지에 복역하고, 그러한 세계를 강대국으로 이끄는 방식으로 풀이할 수 있다. 자유세계에서 해법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고, 국민들을 계몽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90을 넘은 이의 사유가 여전히 대결 구도라는 것도 참 딱한 일이다. 그가 가져야 할 것은 현실주의적 강대강의 대치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근대적 사고 아래 있었고 질병의 원인은 단순히 한 국가의 행동이 전근대적이었다는 데 있지 않고,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의 인식의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복과 대결의 인식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동일한 순간이 많다. 몽골의 습격, 병자호란 등의 전쟁 피해로 외국에 끌려갔던 여성들이 갖은 고생을 하고 돌아왔음에도 환향녀라며 마을 개울가에서 씻고 오라고 호통을 치거나 더럽다고 여겼던 인간의 불쌍함은 두고두고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며칠 전 제주 4.3 항쟁과 이어지는 여순 반란 사건 - 여수 순천 민중항쟁으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 은 빨갱이라는 우리나라의 사라지지 않는 파시즘의 서막이었다. 민중들의 봉기를 총칼로 엄단하면서, 민중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던 여수 순천의 군인들의 저항을 반란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토벌했던 이승만 정권은 그 방식을 6.25 전쟁 때 서북청년단을 동원한 보도연맹 사건 등을 통해 반대 세력을 숙청하는 수단으로 썼다. 여전히 박정희 시대에 반공의 국시는 빨갱이로 이어졌다. 이데올로기적 동거는 한국사회의 기울어진 정치지형으로 이어져왔다. 신에게 의지하듯이 누구 하나의 탓으로는 돌려야 더 이상 생각할 것이 없어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나마의 진보는?
중국에서 발발한 코로나 사태를 여전히 그곳만의 잘못, 그리고 중국의 봉쇄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를 가진 이들이 있다. 국경 봉쇄 전략으로 일관하다가 감염병 대처 전략을 준비하지 않은 유럽은 이제 다양한 원인으로 큰 곤경에 처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상황도 여전한 집단 거주 시설 감염, 해외 유입의 감염으로 인한 추가 확산의 위기에 놓여있다. 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그나마의 진보는 법적 책임이나 기타 원인이 분명한 이유가 아니라, 어떠한 지역을 특정지어서 정죄하거나 비하하지 않는 것이다. 공동체에서 할 수 있는 그나마의 진보는 현실주의적 외교관 속에 조금 더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 지원, 한 인간을 국적이 아닌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 배려일 수 있다.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플라톤은 그 이야기를 정치 엘리트에게 했다.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페르시아 전쟁에서 고전하는 민주정 그리스가 똑똑한 이들의 철인정치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그였다. 그의 발언이 지금에 있어 민주주의를 지키는 강력한 언설로 변했다. 지금처럼 투명한 정보를 공개하고 다들 접근 가능한 미디어가 있는 시대에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사유의 부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루마니아에 나토 수송기로 진단키트와 기타 감염병 지원 약품을 전달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루마니아에 굳이 선제적으로 지원한 이유는 작년에 있었던 헝가리 도나우강 유람선 전복 때 루마니아의 도움에 대한 보답이라고 한다. 도나우강 상류에 있는 루마니아에서 인도주의적으로 아무런 대가 없이 수량을 조절했기 때문에 그나마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는 것, 그들의 보상을 바라지 않고 타인의 죽음에 대한 손길은 지금의 고난에서 또 다른 손길로 번지게 된다. 현실 세계의 권력과 강대국이라는 조건을 무조건 삭제할 수는 없지만, 세계가 큰 위기 이후에 급격한 이데올로기 전쟁, 국지전을 통한 문명의 충돌로 번지지 않으려면 현시대의 진보는 특정한 정죄나 특정 엘리트나 지역의 해결책이 아니라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고 함께 살아가기를 도모하며 힘의 논리의 저류에 깔린 인간의 인식의 무한한 가능성의 방향을 다시금 사유해 보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