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와 동시대
외부 강의를 진행하던 중에 이제 친분이 쌓이게 된 다른 강사께서 대뜸 "박통이 잘못한 게 뭐가 있어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마음에 담은 모든 것을 사람에게 표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죠"라고 말을 얼버무렸지만 나 같은 정치적 성향에 박정희는 비판의 대상이거나 공과가 있는 인물이었을 뿐 보호나 지지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 386세대 이제 60을 바라보는 그의 시대에 박정희는 단순히 권력자가 아니라 그의 젊음과 시대를 대표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박정희를 욕하면 나를 욕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도 물론 다르지 않았다. 미국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복장이 "검은 신발"을 요청해서 근처 신발 가게에 '10달러로 세일합니다!' 문구가 있어서 들어가 10달러 신발을 사러 왔다고 하니 검은색 10.5 사이즈 신발이 있다고 했다. 그게 우리나라로 따지면 285mm 정도 되었는데, 돈이 없었던 나는 그 신발끈을 아주 강하게 쪼이고 신발이 맞다고 했다. 가게 주인은 나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했을 때 "중국에서 왔다"라고 말하고 10달러를 내고 나왔는데 내 발은 265mm였다. 그 강사와 다를 게 무엇이 다를까. 여행 중에서도 쉽게 물어보는 질문이 직업이나 국적인데, 난처했던 일이 쿠바에서 같이 택시 투어를 떠난 이들에게 '독일에서 왔냐?'라고 물어봤는데 '폴란드 사람'이라고 했던 상황도 있었다.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는 우리나라와 일본과 유사하다고 해야 할까, 폴란드는 러시아나 독일의 침공을 당해왔던 곳으로 내가 말실수를 했던 게 분명했고 이후에 택시 안이 고요해진 게 결과였다.
국가는 현재 지구 상에서 나를 판단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분이다. 국적을 증명하는 여권이 없으면 국가 간 입출국이 불가하다. 국경이라는 보이지 않는 토지의 경계를 지키는 일은 공동체의 존립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며 어떤 자연물은 이동이 가능하지만 '인간'은 국가라는 꼬리표를 없이는 자유로운 이동은 어려운 상태이다. 물론 국적이 자유를 제한만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코로나' 사태에서 매일 통계를 집계하는 사이트에서는 국가별로 확진자와 사망자를 매일 업데이트한다. 코로나 발발 이후 우리나라는 감염병 대처의 새로운 교과서를 써간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빼어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국은 발원지로서 그리고 불투명한 대처, 정확도가 떨어지는 진단키트로서 악명을 쌓아가고 있으며 일본은 코로나 배양지로 올림픽 개최 연기 전까지 국가가 정보를 차단하고 검사를 거부하는 등 형태로 제2의 우한이나 뉴욕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2020년 4월 11일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기술한 문서와 소규모의 관료조직으로 구성된 체제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임시정부가 수립된 101주년 기념일이다. 이후에 나라를 되찾기 위한 자주적 행위는 이념과 상관없이 정치적 노력, 군대 증설이나 일본 권력자 위협 같은 물리적 노력도 수행하게 된다. 해방 이후 국호를 오랫동안 남한, 한국으로 불리다가 대한민국이라는 4글자를 2002년 월드컵 응원 때부터 미디어에서 명확히 쓰기 시작했다. 지금 코로나 사태의 가장 투명하고 신속한 조치를 했다는 국내외 기사가 터지면서 '헬조선'으로 불렸던 한국 사회는 '국뽕'의 키워드가 잠식한 상태이기도 했다.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그의 분석은 날카로웠다. 그는 박정희 시대를 나의 성공과 동일시하는 세대는 '배고픔을 해결'하게 해 준 사회문화적 경험을 공유하는 현재의 보수세력으로 불리는 쪽을 지지하는 원동력이 되었는데, 코로나 사태 전후를 두고 국민들이 어쩌면 우리만 몰랐지 선진국이었어, 우리만큼 잘하는 곳이 없었어라는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된 사회문화적 경험을 공유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기사에서 코로나에서 미루지 않고 선거를 진행하는 세계 첫 사례라고 세계가 주목한다는 것도 국뽕으로 드러날 수도 있는 점이다.
3월의 코로나 사태에서 미국 증시 폭락에 이은 국내 증시 폭락에 있어서 개인 투자자 소위, 개미들의 변화도 나타났다. 이는 IMF나 2008년 금융위기의 경험에서 폭락했을 때 어느 정도 거품이 꺼진 가치가 있는 자산을 '줍줍'할 수 있다는 역사적 경험이 개인 투자자에게 작용해서 주식을 하려는 금액인 주식계좌 고객 예탁금이 종래 2.8조 원에서 12조 원까지 증가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동학 개미 운동'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그 세력은 기관, 외국인 투자자에게 밀렸던 예전과 달리 현재 상황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는데, 외국인 투자자가 이머징 마켓인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물량을 매도해서 가장 안전하다는 달러로 눈을 돌렸지만 연기금의 주요 기관인 국민연금의 본부가 전주로 이동한 것을 우금치 전투가 있었던 전북지역에서부터 불어온 바람으로 빗대어 의병과도 같은 개미투자자가 일어나 국내 우량주식을 매수해서 신흥국/이머징 중에서는 가장 적은 폭의 하락을 가져온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것을 우스갯소리지만 '동학 개미 운동'으로 부른 것일까. 나름의 개개인은 합리적 선택이나 몰빵의 전략을 취했을 텐데 그 합이 민족이나 국가를 위시한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불리는 것일까의 문제이다. 이것은 물론 희화화된 면도 없지 않으나 기존의 헬조선 개념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기업에서 10년간 일했던 나는 소위 진보적 지식을 접하고 공부를 하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바쁜 것에 상당히 의아했었다. 헬조선이라는 키워드와 노오력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투쟁을 하지 못한다, 조선땅을 벗어나려 한다 등등의 비판적 논조가 엄청나게 지배했다. 반면에 국가 중심의 역사를 만들겠다는 역사 교과서 논쟁이나 자기 계발 담론이 퍼지며 능력주의와 긍정적 사고방식을 주입하는 세력도 있다. 아마도 그 어딘가에 한 인간은 자리한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다가도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일인가?'의 문을 가지기도 하고 돈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 다음에도 '어떻게 먹고살지, 생존은 어떻게 하지?' 하는 가치와 행위의 문제, 개인의 주체성과 존재의 이유의 문제는 어떤 삶의 경로를 선택한 개인에게 계속 다가오는 질문이며 해답 없는 과정이다. 사회비판적 연구들의 '헬조선' 담론의 디스토피아나 자기 계발, 경영연구의 긍정 담론은 유리되어 있으면서도 어떤 삶 하나를 제대로 그려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자본과 국가라는 현실에 대해서 어떤 삶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에 앞서서 물어볼 것은 한 인간에게 자본과 국가는 어떻게 구성되고 있었고, 그러한 이념이나 물질적 가치 위에서 인간은 어떤 자율적 행위를 드러내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박정희 시대와 그 시절의 시간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것도 비판받을 지점이 있지만 현실에 있는 국가를 무시하는 정치적 언설로 설득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피부색과 성별이 나를 쉽게 판단하는 잣대가 되지만 그것이 무너진 경험에서 또 다른 사유가 태어나면서도 그것을 거부하는 인간에게 가장 큰 정치적 소외가 나타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라는 현실에 주어진 굴레를 다른 사회에서는 어떻게 생각했는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절명한 프랑스 인류학자 삐에르 끌라스트르는 [폭력의 고고학]에서 원시 국가에서는 결코 에덴동산처럼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가 앞선 책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에서 기존의 국가 권력이 통치를 기반으로 했다면 원시 국가 중에서는 권력자가 가장 허름한 구역에 거주하고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는 종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위의 책에서는 그러한 상호부조적인 공동체를 이뤘던 근간에는 인간이 원래 선하다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가 의사결정의 강압성을 드러내려고 했을 때 저항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그 공동체는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고요해 보이지만 팽팽한 개인, 그리고 국가와 동일체로서 설명되는 개인이 아니며, 무한한 세계를 가진 존재로서 인정받기 위해 권력이나 다른 가치에 끝없이 저항함으로써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코로나의 시대, 백신 개발이나 안전의 문제는 물론, 또 다른 공황을 예상하며 경제적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또한 국운이 상승하는 시대이다, 선진국이 되었다는 어떠한 충족감이나 사회문화적 성취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볼 일은 그로 인해 한 인간을 무한히 소중히 하며 유동하는 국가를 어떻게 구성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저항과 사유에 대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