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서는 '정보보호'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보보호 교육이 그룹연수 때부터 시작해서 신입사원의 사업부 연수는 물론 매년 임직원 교육이 진행된다. 특히 삼성전자 반도체에서 오랫동안 정보보호는 기술적 방법론이 아니라 '의식'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던 멋진 강사님이 생각난다. 반면에 한 부장의 이야기도 있다. 박사과정에 필요한 자료나 그동안 자기가 외부에서 공부해왔던 파일이 담긴 USB를 깜빡 잊고 사업장안에 들고 갔다가, 출입문 보안 검색대에서 적발되었던 그였다. 후배 사원의 밥을 사주거나 파트 회식을 할 때 자기 돈을 쓰기도 하고, 자기 성장의 결과는 이 회사 때문이다라고 말하던 그는 보안 게이트에서 자기가 엄마잃은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삼성의 보안체계는 대단하다. 일단 특별한 허가를 받은 PC를 제외하고 USB 등의 저장매체로 파일이동은 불가하다. 업무PC의 와이파이 이용은 불가하다. 물론 보안에서 개인이 아주 '의식'적으로 파일을 빼낼 수도 있겠지만 핵심 내용은 문서관리시스템, 기타의 보안 규정에 의해서 열람 및 복사자체도 불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의식'은 생활세계를 규정하게 한다. 일단 회사는 무서운 대상이 될 때가 많다. 요즘이야 사내 게시판에 '보너스는 대체 언제나와요? 이 사업부는 왜 일도 안하는데 더 받아요?' 등등을 물어본다고는 한다. 내가 신입사원 때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 벌어진다. 보너스 받을 때쯤 동탄 맘카페에서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사람들은 50%가 나오냐 안나오냐를 1월말 전후해서 쉬쉬하며 말을 한다. 그렇지만 몇%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사전달 권한이 직원에게는 없다. 노동을 한 이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회식자리에서 가게 뒷 문 공터에 나와 담배를 한 두대 피면서 이번에 나와야 대출금을 값는데, 와이프가 좋아할텐데 등등 넋두리를 조심히 늘어 놓는다. 매년 겨울은 그래서 따끈했었다. 회사가 무서워지는 수 많은 장치는 있지만 이정도만 얘기하고.
과장정도 일천한 경험으로 무엇을 일반화하기 어려우나, 회사를 나왔음에도 나 또한 삼성 그리고 이재용을 비판하는데는 몇 번의 마음먹기가 '의식'적으로 작용한다. 매일 아웅다웅하던 삼성 선후배들 그들의 일에 대한 열정과 생활의 고통은 타인이기에 인지할 수 없기에 존중할만하다. 이재용과 삼성에 대한 비판이 '나'를 비판한다고 여기는 수 많은 사람들도 있다. 아울러 이재용의 비판이 나라 경제를 비판한다는 논리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두려움이 오면 그것을 두려워하는 내가 창피하다가 이내 두려움의 기제를 정당화한다. 가장 크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부터 '먹고살자'는 두려움 앞에서, 남들보다 뒤쳐지면 안된다는 것에서 반면에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면 어쩌지하는 두려움 앞에서. 이러한 개인적 정당화는 집단의 의식 연합을 이루기가 쉽다. 이제 보안의 장치나 나에게 해가 올 것이라는 팩트나 정황이 없을 때에도 의식은 강하게 자리한다.
오랫동안 시간을 끌던 이재용의 뇌물 수수나 회계부정에 대한 사건이 전말이 밝혀지고 있으며, 대법원 파기 환송심을 앞두고 구속여부에 대해서 '범죄사실은 소명되었으나' 구속의 필요성이 정당하지 않아서 구속은 면했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뇌물을 받은 것으로 감옥에 있다. 이재용은 뇌물을 주었음에도 감옥에 들어가지 않는다. 4.5조원이 넘는 심각한 회계사기가 일어났다. 삼성물산 제일모직의 합병비율부터, 그것을 합병하기 위해 국민연금을 끌어들인 것부터 바이오 산업이라는 이익도 없는 사업을 뻥튀기 하면서, 금융기업, 회계법인, 정부 기타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다. 그때 동원된 수 많은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서, 회사를 위한다는 의식에서 했겠지만 몇몇은 그들 마음 속에 얼마나 큰 자괴감과 상처가 있었겠는가 싶다. 그래서 몇몇은 사업장 바닥에 몰래 파일을 숨겨놓은 것을 알리기도 했다. 얼마나 그는 마음을 졸였겠는가. 그들을 알 수는 없으나 비슷한 그들이 있다. 임원을 달기 바로전에 수 많은 윗분들을 만나야할 내 상사가 저녁쯤와서 그대들이 보고 싶어 부사장 석식자리에서 빠져왔다고 얘기했을 때의 모습이 비친다. 내가 잘못했던 연구개발의 실수로 주간 회의에서 욕을 하도 먹어 얼굴이 벌개진 상사가 '별일 아니다 이게 내 할일이지' 했던 그 모습도 비친다. 그 엉켜진 생활의 상황에서 복잡한 사람들을 내 의식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삼성의 변호인단에서는 '검찰 수사 심의위원회'라는 제도를 활용했다. 발언권이 없는 사람들이 검찰의 잘못된 기소를 바로 잡겠다는 제도를 악용했다. 엄청난 변호인들은 모이고 또 모여 똑똑한 언어로 곡학아세하면서 범죄 성립여부가 아닌 범죄 성립여부를 묻는 것자체를 막는다. 수많은 언론들은 쉬쉬하고 기소 불기소 여부가 무슨 경합인 것처럼 말을 해댄다. 두려워서 정당화하고 정당화하기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 안다. 내가 아끼는 한 사람에게 커피를 마시며 '박사학위가 끝나면 삼성민중사를 써볼까 해요.'라고 말하자 '그러다 어디 잡혀가려면 어떻게 하려고?'라고 되묻는다. 내가 뭐 핵심 의사결정 사항을 아는 것도 없는데 무슨. 나는 언젠가 그냥 이건희가 말 한마디로 무엇을 했다, 회장님 말씀에 벌벌떨며서 낭독하던 사장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었다. 반도체 라인을 24시간 돌리며 메인터넌스 업무를 하던 이가 방진복 사이에 흐르는 땀을 닦다못해 마스크로 흘러내린 모습을 생각해 냈다. 라꾸라꾸 침대에서 밤을 지새다가 새로운 제품이 완성되냐 마냐를 고심하던 푸석푸석한 얼굴이 생각났다. 집에 들어갔더니 애가 나를 상당히 낯설어 한다면서 쓸쓸히 웃던 사람이 떠오른다. 말이 아닌 손끝의 이야기, 침이 아닌 땀의 이야기가 궁금했을 뿐이다. 다만 그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것 뿐이다.
USB 하나에 모든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했던 사람, 회사에서 성공도하고 싶지만 사람들도 살피고 싶었던 사람, 이재용과 삼성과 나의 세계를 일치시켰던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던 삼성의 규정과 의식이 점점 국가 전체로 퍼져나가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러한 상황에 국가의 장치인 검찰과 법원, 그 체계는 한 사람 한사람의 의식세계에 어떠한 정당화나 비판의식을 가져올 결과를 만들어낼까? 이번 사건의 결과에 따라 그것은 '아, 이재용은 막을 수 없구나'라는 두려움과 정당화의 대상, 비판 불가의 신적 존재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국가 제도가 한 사람을 정점으로 바뀔 위기에 있다.
웃기다. 신입사원 때 부서배치를 받고 처음 들어왔을 때 이재용이 훈시를 왔다. 와.. 잘생겼다 귀티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언가 보이는 자신감에 매력을 느꼈다. 그렇지만 얼마 이후 그러한 자신감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었음 알게 됐다. 나는 무엇을 알기에 대단치도 않은 내용을 조마조마 쓰고 있나. 지금 주저리주저리 무엇을 쓰는 나도 웃기다. 그냥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하면 될 것을 이리저리 재고 있는 내가. 이럴 땐 무언가를 먹어줘야 한다. 아내가 좋아하는 계란 반숙 감동란을 만들어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