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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성형내과는 있다

마음을 자극하는 일 가능하면 가소성(plasticity) 있게

제가 사는 동네에도 성형외과가 있습니다. "넌 압구정에서 성형하니? 난 XX에서 해, MBC 공식 지정..." 어쩌고저쩌고. 집에 도착할 때쯤 버스 안내방송에서 동네 성형외과 알림 광고가 들려옵니다. 항상 신나 있는 그 목소리죠. 그래도 하면 아플 텐데요. 스피커에서는 줄기차게 외모의 변화가 자타 시선의 달라짐과 생활 및 삶의 바뀜을 말하지만, 제 귓가를 울리며 고개를 가로젓는 목소리가 느껴집니다. 저는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겸손한 외모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놀지 못하던 아이들이 공부하기가 쉽듯이 외모를 가꾸어도 표시가 나지 않던 저에게 내면은 가장 날카로운 동아줄이 되었습니다. 붙잡아야 할 나의 마음, 그것이라도 있어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했습니다.


성형외과, 플라스틱 서저리(Plastic Surgery)입니다. 한 번 칼을 대면 바뀝니다. 들락날락할 겨를이 없습니다. 기준선을 그어놓으면 사정없이 칼날이 들어오고 주사와 호스가 들어옵니다. 인간은 그렇게 자극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성형외과 처방전은 아마도 부기가 빠지는 약, 어서 기준선대로 바깥이 만들어지길 원하는 약, 자극이 들어갔으니 소염과 진통을 없애는 약 등이 들어갑니다. 민간요법으로 단호박이나 얼음찜질 그리고 방콕이 활용되기도 합니다.


성형내과, 플래스틱서티 서저리(Plasticity Surgery)라고 정의해보렵니다. 언어로 마음에 투명한 칼을 댑니다. 종이에 손이 비는 것이나, 비말은 닦아내면 되지요. 들락날락하며 마음을 흔들어 댑니다. 기준선도 없이 욕망 혹은 성찰 때론 사랑과 증오로 비치기도 합니다. 인간은 투명한 자극으로 바뀔까 하다가 이내 관념이라는 투명의자 앞에 앉아버립니다. 성형내과 처방전은 아마도 말, 다시금 농익은 언어, 혹은 남들이 찔찔 짜는 울음들이 들어갑니다. 민간요법으로 판단 중지(epoche), 안아주기(Hug), 술 마시기(Drinking), 걷기(Walking) 등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plastic은 플라스틱입니다. 무언가 멈추고 만들어지고 정형화된 느낌입니다. plasticity는 가소성입니다. 무언가 소심하게 움직일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가소성은 어릴 때 배웠던 책에서 열가소성 수지와 열경화성 수지로 그나마 떠오릅니다. 곧 플라스틱 같은 석유화학제품은 크게 열을 가해서 그 모양이 변하는 열가소성 수지와 열을 가해도 모양이 변하지 않은 경화성 수지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열가소성 수지 중에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범퍼가 있다고 합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가장 전면에서 자동차에 들어오는 충격을 막아주는 이가 열에도 모양이 변할 정도로 소심한 가소성 수지였다니요. 야리야리한 가소성이 충격의 완충을 해주기 때문이라네요. 이제는 앤티크 제품 혹은 취향으로 인식되는 레코드판도 대표적인 열가소성 수지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마음을 쫀득하게 해주는 녀석이 그 물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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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소성이라는 단어는 요즘 뇌과학에서도 많이 나옵니다.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은 인간의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어떤 연구에서는 몸은 20대 중반에 노화하지만 마음은 혹은 정신은 아니면 정신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기관인 '뇌'는 늙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가능성을 뇌의 가소성이라고도 합니다. 신경세포가 어떤 시냅스 연결이 되어서 그것이 자극이 되고 습관이 되어 생활을 바뀌는가를 역동적으로 그려내는 개념입니다. 물론 부담스럽습니다. 바뀌지 않는 사람을 가소성의 부족이라는 역량 차별로 평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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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성(plasticity)은 탄성(elasticity)과 다릅니다. 탄성은 야구공이 야구배트와 만나서 찌그러지더라도 그 바깥의 힘이 사라지면 야구공이 다시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 가는 성질인데, 소성은 한 번 힘을 받으면 겸손하게 형태를 유지하는 성질입니다. 꼭 움켜쥔 고무찰흙처럼 힘없어 보이고 바깥에 굴복하는 것 같지만 바깥의 힘에 유연하게 반응하며 바깥과 어우러지는 성질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그렇게 때론 열정적이지만 겸손하게 변하는 가소성을 바탕으로 마음을 들여다보는 성형내과를 오픈합니다.


아마도 진료 방식은 글이 됩니다. 의료 민영화 및 대중 의료의 양날의 검인 원격 진료를 저부터 실행하는 오욕의 시도일 수도 있습니다. 처방전 역시 글이 됩니다. 대박식당에는 메뉴가 하나라는 것이 백종원의 지론이지만, 저는 할 수 있는 게 글 밖에 없어서 단일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타인의 처방을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저의 부족한 과거와 현재를 그나마 좀 가소성 있게 바꾸는 이야기로 엮어가려고 합니다.


가소성의 기반은 삶의 부끄러움과 인류의 고통에 참기 힘든 연민입니다. 부끄러움은 결핍 있는 저에 대한 연민입니다. 연민은 타인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에 대한 부끄러움입니다. 둘은 참 맞닿아 있습니다. 개인적인 것이 되게 정치적인 것인 거 같아요. 정치적인 것의 표현에 자기표현으로서의 행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불편하지 않았던 것이 불편하게 되고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가지고 불평등한 것에 눈물이 나는 처방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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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모두가 아파할 때 성형내과는 겸손히 닫을 것입니다. 매주 일요일 오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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