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까지 D-30, 왜 이 글을 연재하는가?
다시 이곳에 사원증을 찍고 들어올 것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26살 끝자락에 제 발로 들어가 36살 초입에 다시 내 발로 나왔던 그곳. 바로 첫 직장이다. 그리고 마지막 직장이었다. 홀로서기 한 뒤 3년, 그리고 지금까지 4년이 되었고 나는 4년째에 다시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 버스를 새벽같이 탔고 사원증을 찍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업무지시를 받고 업무를 수행하고 보고를 했다. 회의를 하고 다툼이 있으며 술로 말로 커피로 관계와 일들을 풀어갔다. 그렇게 39.2살에 시작해 40.1살까지 왔다.
두 번째 퇴사가 0.1살, 곧 1개월 남았다.
아마도 두 번째 퇴사는 머릿속에만 남지 않고 손에도 글에도 장면에도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바람을 움켜쥐듯 잡아도 소용없음을 안다. 더 이상 새로운 전화번호를 쉽게 외울 수 없으며 외우려 하는 것도 곧 모래 위에 쓰듯 스러져 가는 것도 몸소 느끼고 있다. 조그만 발자취라도 사람은 한 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머무르고 어디에 있었는지 발자국의 무게를 기억한다고 생각한다.
발자국의 무게. 아인슈타인이 중력은 힘이 아닌 공간의 휘어짐이라고 말했다. 꼭 같은 거리를 빙 둘러가는 곡선과 가로질러가는 직선을 걸을 때 시간이 달리 가는 것처럼, 발자국이 오래 머물던 곳에서는 기억이 오랜동안 머문다. 그곳에서 물리적으로 나왔더라도 화학적으로는 아직 반응하고 감응하는 나를 본다. 발자국, 기쁨이던 슬픔이던, 비루 함이든 간에 나는 걸어왔고 머물러왔고 떠났었다.
그래서 13년 만에 다시 맞닥뜨린 첫 근무지는 여전히 나의 마음속에 바람을 일으켰다. 센 바람도 아닌 잔잔한 바람. 그렇지만 그곳에 물리적으로 머무는 시간도 이제 30일 남았다.
두 번째 퇴사가 0.2살, 곧 2개월 남았을 때, 아니 그전부터 나는 이 곳에 다시 들어올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고 끄적여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11개월의 일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후임자를 뽑는 시점에서 남기고 싶은 욕망을 고이 그려본다.
그렇게 벗어버리고 싶었던 사원증 목줄을 찰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유리컵을 뒤집어 벼룩을 가둬놨더니 유리컵을 치워도 더 이상 유리컵보다 높이 뛰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그곳에 들어가 10살을 먹도록 그리고 다시 들어가 10살보다 두세 배는 더 많이 곧, 회사가 삶이던 사람들을 만났더니 동병상련이면서도 수수방관한다는 복잡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그런 복잡한 마음을 이야기할 것이지, 무슨 해결책이나 방향성이나 퇴사 후 삶의 방법을 말하고 싶지 않다. 복잡한 마음을 유심히 때론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자 한다.
매거진은 아마도 매일, 2월 말까지 적어도 20 꼭지의 글로 구성이 된다.
큰 질문은 아래와 같다.
첫 번째 다시 들어와 보니 어떤 나에게 가장 감응할 만한 기억은 무엇인가?
두 번째 두 번째 와보니 이 곳과 이 곳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이 들던가?
세 번째, 이곳의 사람들은 왜 회사에서 안정감과 두려움을 느끼는가?
이것들이 섞여 추운 겨울에서 봄의 문턱에 다다르는 시간에 맞춰 전개된다.
많이 읽어주시길요. 감사드립니다.
#퇴사 #직장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