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월 중순이 되었네요. 저에게 이번 겨울은 마지막으로 맞는 방학이었습니다. 제 삶에서 더 이상의 방학은 없다는 생각에 논문을 읽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웠지만 마음만큼 이룬 것도 없이 시간이 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계획 세운 것도 한 달 전이네요. 2017년 새해 맞이 후에 곧 음력 새해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 정월대보름에 동해바다에 갔었는데 아침에는 해보고 저녁에는 달보며 또 소원 빌었습니다. 소원만 빌다가 행동이 늦어질 것 같아요.
어제 학교에서는 새내기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고된 입시를 마치고 대학생이 된 그들에게 이번 2월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요. 혹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마음이 아픈 그들에게는 또한 취업의 길로 곧장 들어선 사람들에게는요. 거의 스무 해 전 고등학교 졸업식의 미묘한 분위기는 아직도 기억납니다. 어디로 가던 어디로 가지 못하던 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 2월. 고등학교는커녕 일반적 성장의 길에서 빗겨난 스무 살들에게 2월은 또 어떤 의미로 다가올런지요. 일반적이라는 표현도 폭력적입니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어 2월말에 있는 졸업식 풍경도 그리 밝지 못하겠죠. 미취업이 일반적입니다. 가끔 학교에는 몇 학번 누구누구가 어디에 취업했다더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습니다. 취업을 기념하는 것도 있겠지만 취업이 기념할만한 일이 됐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취업한 사람들도 2월에서 3월 대부분 승진과 인사철을 보냅니다. 즐겁다 행복하다 열받는다를 밖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공간의 미묘함이 있습니다. 제가 회사를 다닐 때 2월 28일에서 3월 2일로 넘어갈 때 사내 메신저 직급 변동을 보거나 부서 이동을 보고 마음을 쓸어내리거나 안타까운 한 숨을 내쉬기도 했었습니다.
2월의 가장 헛헛함은 겨울에 떠나간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랜 지병를 견디다 하늘로 떠나간 사람들 소식을 자주 듣게 됩니다. 누군가의 죽음에 진심어린 위로를 할 수 없을 때 저도 떠나가게 되는 것인가.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밥을 나누고 이야기를 하는 장례식의 모습. 그 역설적인 풍경에 언젠가부터 묘한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30일도 채우지 못하고 3월이 성큼 다가옵니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 것처럼 꽃은 다시 피고 복잡다단했던 졸업식도 마무리되어 또 어딘가에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2월이 짧아진 이유는 고대 로마의 두 인물 때문이죠. 태양력은 1월에서 11월까지 번갈아 홀수 달 31일, 짝수 달 30일을 반복하고 마지막 12월이 29일로 정해졌었습니다. 4년에 한번 12월이 30일이 되죠. 그런데 로마 카이사르가 11월에 권력을 잡았는데 당장 제위에 오르고 싶어 11월을 1월로 바꿔버립니다. 그래서 그때의 11월(January)이 1월이 되버리고 12월(February)이 2월이 됩니다. 2월이 29일이나 30일로 바뀌게 되죠.
그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는 한 술 더떠 자기가 태어난 8월을 본인의 이름 아우구스투스(August)로 바꾸고 원래 짝수달이어서 30일인데 2월에서 하루를 빼앗아 31일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현재와 같이 2월은 28일이나 29일로 바뀌어 버립니다. 힘의 논리는 2월의 헛헛함을 거들었습니다. 제위에 오르려고 달력을 바꾼 카이사르는 심복이었던 브루투스에게 암살을 당하고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원로원을 무력화하고 최초의 황제가 되지만 그도 역시 하나의 동상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2월의 헛헛함 속에 하루와 한 순간, 한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 기억해 봅니다. 추위와 바람을 견디는 앙상한 나뭇가지도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양이 없습니다. 중하지 않은 나뭇가지는 없습니다. 오지도 않은 3월의 따뜻함을 고대하기보다 2월의 추위에도 차 한 잔 나눌 누군가를 떠올리며 온기를 높여봅니다. 아마도 2월은 헛헛하기보다 마음을 한 차례 비우는 시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