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육아일기]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결혼 12년 차 육아 0년 차

2020년 1월에 제주 신라호텔에서 나만 왜 아이가 없냐는 의문이 터진 뒤에 마음은 뒤숭숭해졌다. 아내도 그랬을까. 급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여행이 최고다. 한 달 뒤에 다시 제주도 중산간 지방에 숙소를 잡고 열흘 가까이 있었다. 신천지 발 코로나 1차 유행이 갑자기 시작되는 바람에 제주도 귀국길은 그렇게 한산할 수 없었다. 제주도 확진자가 1명밖에 없던 터라 마스크를 안 하면 택시기사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덕분에 주말이고 평일이고 한산한 제주도에 있었다. 농협 하나로마트에 들러서 먹을 것을 사서 숙소에서 밥을 해 먹고 숙소 근처 빈 커피숍에 몇 번 들러 고요함을 즐겼다. 그에 앞서 1월 말부터 나는 플랭크 운동을 시작했다. 3일도 안돼서 근육이 뻐근할 때쯤이면 운동을 그만 두기 십상이었는데 제주도 숙소에서 6일 차를 맞이하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살려고 선택한 내 방식이었다. 여전히 나는 무모하게 아내와 오름과 오름의 없는 길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산 바깥으로 빠져나오기도 했다. 아내의 니트에 따개비처럼 도깨비 풀이 붙어있기도 했다. 헤매다가 나인브릿지 골프장을 만나기도 했다. 글을 쓰는 2021년 1월, 지금의 코로나 현실은 물론 내 삶의 큰 변화도 모른 채 삼방산 앞 흔들리는 유채꽃밭을 헤치며 사진을 찍었다. 스냅사진 작가를 불러서 새별오름에서 커플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길이 금세 어둑해졌다. 올라갈 때와 달리 사람이 희박하고 관광지에 빛은 귀했다.


두 달간 자연 임신 시도가 불발되자 아내는 동네 여성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전문 난임 병원 가는 것을 추천했다. 집에서 버스로 20분이면 도착하는 서울역 차병원에 갔다. 꼼꼼한 아내는 난임 시도는 월경 지난주에 가야 가장 효과적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4월 말 첫 진찰을 하고 나는 한 달이면 모든 일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의사는 과정은 지난하고 복잡함을 강조했으며 남편은 건강관리에 철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세는 나이로 41살 아내는 38살, 바로 시험관 시술을 받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이 나의 건강관리를 강조할 만도 한 것이 아내의 몸은 그때부터 건강관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여성의 몸은 실험실이 되고 내 몸의 생산물은 실험 재료에 불과했다. 아내는 초음파부터 혈액과 소변 채취, 과배란 주사, 돌주사라고 불리는 아픈 엉덩이 주사의 처방과 시술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했다. 안 그래도 주사를 싫어하는 아내는 힘들어했고 나는 병원에 같이 가는 일, 배에 주사를 대신 놓은 일 이외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단 두 번 성인물을 보고 수음을 해서 실험 재료를 공급하는 역할만 있었다. 그 일마저 크고 세밀한 스케줄을 가진 이 병원에서는 아내의 시술 때와 맞물려 진행되었고 내가 마치고 나올 때쯤 아내는 시험관 시술을 위해서 시술실에 있거나 기타 다른 치료를 받고 있었다.


'과'하다는 것은 여전히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시술에 아내의 몸은 무엇보다 과한 터널 속에 있다. 과배란 주사로 난포를 터트려 월에 1개만 나오는 난자를 과량 채취한다. 이것도 그때 몸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어떻게 복수 횟수의 과배란 주사를 맞을 수 있을까, 내가 하지 못하는 일에 '내 질문'이 너무 섣부른 것은 아니었나. 시험관 시술을 하고 나서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 다시금 어두워지는 순간이다. 인간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왜 수정과 착상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는지 그렇다면 왜 난임은 일어나는지를 알 수 없다. 근대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어떻게는 가능했지만 왜의 영역은 인간의 품행과 태도로서 이론보다는 실천으로 근접할 수 있었다.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다만 그 절차 중에서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한다. 초음파 전문가는 아내가 긴장하지 않도록 편안한 말투로 안내하고 의사는 끝없이 줄 서 있는 대기자들 앞에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들의 사연을 드높일 때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두 세평의 방에서 단호하며 호탕하거나 냉정하거나 따뜻함을 공전한다. 183명째 돌주사를 놓는 선생님들과 반복해서 시기마다 약을 수백 번 전달하며 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선생님들은 또 그 지루함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작은 절차상 불편이라도 있으면 또 갑자기 소비자로 돌변해버리는 벼랑 끝 내원자들은 몸을 생각하면서 작은 성미를 내려할까.


그렇게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 주문을 외우고 나름의 주술을 벌이다가 6월 3일, 수정과 착상에 성공했다. 요행도 이런 요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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