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끝나버린 시험관 시술은 이후 삶의 계획을 상당히 바꾸어놓았다. 2월 하순으로 예정일이 정해졌다. 내 어릴 때 기억으로 2월생 아이들은 얍삽해 보였다. 빠른 생일이라면서 안 그래도 경어체가 많은 우리말에 관계의 혼돈이 오기도 했다. 이제 음력 생일을 감안해 한 살 빨리 들어갔던 관행은 사라졌고 1월 2월생이 어린 축에 속하기보다 같은 나이에서 몸집도 상대적으로 크다. 아이는 어쩌다 보니 2월 생이 되었다. 시험관 아이가 되기만 하면 되지 언제 시기까지 따지고 있겠는가. 역시 꼼꼼한 아내는 휴직 일정을 확인했다. 2월 설날에 시댁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까지 나온다. 효녀인지 효자인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마음에도 쏙 든다.
한 달 정도 안정기를 가져야 한다. 아내는 자기의 몸을 아이를 위해 챙긴다. 혹여라도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고 걸음걸이도 느려졌다. 몸의 작은 변화들을 시시콜콜 나에게 말한다. 지금 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전히 아내의 몸은 자기를 위하면서도 생명인지 생명이 아닌지 모를 그 녀석에게 곤두서 있다. 7월 중순 안정기에 들어섰을 때쯤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친구들과 하루 여행을 간 길이었는데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목소리가 들렸다. 탄성과 울음과 기타 무엇이 들려왔다. 전파가 그 무엇을 담은 것인지 디지털 정보가 전할 수 없는 무엇이 느껴졌다. 10년을 넘게 아들 눈치 보면서 말도 못 꺼내시던 어머니는 옆에 친구 분에게 '애를 가졌데'라고 했고 옆에 친구들은 '어머어머'를 연발했다. 어머니는 여행 중이라면서 또 통화하자고 했다. 스무 살 이후로 그런 억양을 들어본 적이 있나 싶었다. 뭐 어머니와 나는 개별 가족에 속해있는 사람이지만 그 나눔이야 내 생각이 지배적이지 않겠는가.
그때쯤 태명을 지었다. 처음에 귀여운 발음을 생각하고 명확한 출생지를 고려해서 '래비'로 정했다. 차병원 의학연구소에서 나왔으니. 연구소의 영어명 '래버토리'의 앞 두자를 땄다. 예전에 내 친구의 형 이름이 '군산'인 적이 있었다.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랬다던데. 아내와 나는 그런대로 만족했는데 친가를 만나 태명을 말하는데 영 시원찮은 얼굴이다. 이유는 알 수 없으니 잠자코 있다가 다른 지인들을 만나 임신 소식을 정하면서 태명과 그 뜻을 말했더니 당장 바꾸라고 했다. 이름은 또 다른 주문이기 때문이다.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였다. 래비라는 단어가 가진 사전적 의미도 그렇지만 그 뜻이 아이에게 전달된다는 것. 물론 전혀 과학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근대적 발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관념과는 전혀 상관없이 실천의 영역에서는 조금이라도 해를 끼칠까 고민의 고민을 한다. '임상실험'의 근본적 두려움은 바로 몸은 계속되고 그것은 하루아침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말은 새겨듣지 않고 지인의 논리에 동감했다. 태명인 래비는 아내의 스타벅스 아이디 '골드래비'에만 남아있다.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아내와 나에게 금세, 성큼성큼 다가왔다는 생각에 '성큼'이로 정했다. 기쁨이도 있고 뭐 이런저런 귀여운 이름들이 있는데 뭐 삶이 그렇게 기쁨인지는 모르겠기에 미안해서 그것으로 정할 수는 없었고, 뭔가 독특한 이름을 짓고 싶었다. 나름 괜찮았다. 몇몇 사려 깊은 사람들은 태명을 잘 기억했다.
침대에 누워 아내의 배를 만지기 시작했다. 아내의 배가 늘어가지도 않았는데 아내가 숨 쉬는 것을 태동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역시 정신보다 육체가 삶을 제단 한다. 사람의 향기, 손의 촉감, 숨결은 잊어버리기 쉽지 않다. 세포인지 생명인지 명확히 할 수 없는 그 존재를 '태아'라고 규정지으면서 그는 생명권을 획득한다. 서구 근대적 사고는 계속해서 명료성을 요구하고 가부를 결정한다. 원하는 임신이었다면 그때부터 생명이다. 무엇이 생명으로 여겨지지 않던 때도 있었다. 고통은 그것으로 시작되기도 한다. 핏줄과 혈통이 한 인간보다 소중했던 때 인간은 모멸감을 느끼게 되며 다시금 그 모멸감을 전가하거나 체화한다.
아이를 가지면 그런 머릿속 논리는 사라지고 몸의 감각만 남는다. 자그만 움직임에도 그것이 태동인지 궁금한 나에게 맘스홀릭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인터넷 카페는 그것은 착각이라고 알려줬다. 그렇지만 이미 태동인지 의심한 순간이나 청각이 없는데도 태명을 바꾼 일부터 논리보다 실천이 앞서게 된다. 행여 작은 순간 때문에 아이와 가족의 삶에게 무엇이라도 영향을 미칠까 고심한다. 그전에 음식을 주는 대로 군말 없이 먹었던 아내이지만 음식의 '당김'을 특별히 여긴다. 풀리지 않는 몸의 영역, 그것은 그저 순종할 수밖에 없다. 갈비탕이 몇 주 좋다가 이내 과일이 당겼고 꾸준히 연어초밥은 좋아했다. 지금 물어보니 연어가 생태계 상위 종이라 혹 아이에게 안 좋을까 임신 초기에는 좀 참았단다. 그래 역시 마음보다 몸이다. 어느새 성큼이의 보이지 않는 몸이 아내와 나에게 밀려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