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2년 차 육아 0년 차
나는 눈물이 많다. 누나와 내가 부모님께 혼나면 항상 내가 먼저 울었다. 꿋꿋하게 손바닥을 맞고 있는 누나와 달리 나는 한 대만 맞아도 양손을 비볐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손을 등 뒤로 빼서 등에 문지르기 바빴다. 국민학교 체육시간에 다리가 부러지고 나서는 괜찮았다. 며칠 입원하고 아침에 학교 교실에 들어갔는데 눈물이 핑돌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상장에 내 이름이 잘못 적혀 있었는데 선생님이랑 아이들이 웃자 창피했는지 또 눈물이 떨어졌다. 스무 살이 넘어서는 군대에서 탄약고 근무를 서서 절반은 거짓말일 사수의 인생 얘기를 들으면서 먼 산을 바라보기 일 수였다. 기업에 들어가서 회사의 발전사를 듣는데 두근거리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외부 교육 프로그램 시간에 옆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그를 소개하는 데 내가 감동을 받아서 눈물을 흘리는 통에 분위기가 서먹해지기도 했다. 영화와 드라마 보면서는 물론 요새 유행하는 싱어게인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울고 있다.
남자 친구들은 서른 후반이 지나면서 눈물이 늘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호르몬의 변화인지 삶의 굴곡이 생겨 그 안에 맺힌 고뇌가 떨어지는지 알 수 없다.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이 심신이 약해지는 자신에 대한 연민 인지도. 그 녀석들은 술이 두 병 씩은 들어가야 아내와 아이들과 티브이 보면서 몰래 운다고 털어놨다. 눈물은 인간의 가장 큰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다. 베르그송은 감정을 몸의 반응으로 생각한다. 그는 인간이 몸집이 커지면서 모든 자극에 대한 반응을 할 수 없으니 눈물이나 여러 감각 수단을 통해서 표출한다고 말했다. 눈물은 자극과 반응에 대한 몸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런데 강한 남성성을 강조해왔던 문화에서는 눈물을 참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모로 자기 자신에게 실망스럽고 가족에게 미안했을 아버지가 찬송가를 부르면서 목이 메는 꼴이 여간 부담스러웠었다. 아버지는 그 복잡한 감정을 눈물로 표현하기 서툴러했다. 다행히 나는 어렸을 때 눈물을 그치라거나 사내가 울면 안된다는 말은 듣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요새 눈물 조절에 도전하고 있다. 남 앞에서 남자답지 못한 모습이기 때문에 눈물을 참으려는 게 아니라, 눈물이 터져 버리면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언어적 표현보다 비언어적 표현이 대화의 비중에 더 크다고는 한다. 그래도 꼭 싱어게인 가수가 촉촉한 눈망울을 넘어서서 눈물이 터지면, 듣는 사람과 노래하는 사람의 감정의 교류가 부서져 버리는 것과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 사랑스러움과 귀여움, 언어 표현으로 가능하지 않는 몸짓들이 눈물샘을 매일 마르게 할 것 같다. 과거에 부모들이 가졌던 나에 대한 웃음과 울음이 나의 몸에 스며들어 있듯이. 그 눈물의 연대기가 역사나 족보에 남아있지 않은 진화의 자국이다.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감정을 조절했으면 좋겠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목이 메이거나 감정이 벅차올라 노래를 끝까지 못 부를 때가 있는데 감정을 얼마나 벼려야, 감정을 느끼면서도 적절하게 표현하게 될까. 아이는 어떻게 나와 아내의 얼굴을 거울처럼 그대로 모방하면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고 자기도 모르는 공감을 표출해낼까. 상당한 굴곡의 일희일비가 있을 것 같은 육아의 감정선은 부쩍 아이들을 보며 눈물이 난다던 남자 친구들처럼 될까 삶의 굴곡을 견디어온 깊은 눈빛의 노파처럼 될까. 냉장고에는 아이의 입체 초음파 사진이 붙어있다. 처음엔 괴상해 보이더니 이내 눈물 참기를 연습할만하다. 2주에 한 번씩 병원에서 초음파에서 움작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다시금 눈물 조절 기술을 연마한다. 퍽 행복하지 않은 세상에서 이 아이가 나오는 것만 해도 참 미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