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아이리시맨

현대사와 만난 언어 없는 인간들의 고백록

배경 사진 출처: Al Pacino, Martin Scorsese and Robert De Niro at 'The Irishman' International Premiere and Closing Gala of the 63rd BFI London Film Festival in London, U.K. (Photo credit: Dave J Hogan/Getty Images


세 사람이 있다. 왼편부터 본명은 알 파치노, 마틴 스콜세지, 로버트 드 니로. "노, 지, 로"로 끝나는 이탈리아에서 온 미국 이민자들이다. 그들은 1940년대에 출생했다. 지금은 영화계를 대표하는 전설의 배우와 감독이 되었지만 그들은 미국의 이민 역사에서 나중에 들어온 차별받는 이들이었다. 영화 제목은 '아이리시 맨'이다. 이탈리아 마피아 혹은 지미 호파라는 이탈리안의 감춰진 죽음의 이야기에 아이리시인 로버트 시런(로버트 드니로)이 연결된 것, 아이리시와 이탈리안, 그들은 미국에서 차별받는 이주민이었다. 영국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프랑스 군을 무찔러 내서 독립혁명을 이끌었을 때 그들은 기득권이 되었다. 아이리시(Irish)들은 오랫동안 잉글리시(English)에게 점령당했었고 감자 파동에 의한 대기근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이주한 이들이다. 그들은 자유를 찾고자 했으나 역시 미국에서도 허드렛일에 동원됐다. 이탈리안(Itailian)은 그보다 더 늦다.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무솔리니의 파시즘, 군국주의를 피해온 힘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주로 이탈리아의 부를 거머쥔 북쪽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니라, 바닷바람 맞고 자란 남쪽 이탈리아에서 건너왔다. 또한 아이리시, 이탈리안 모두 청교도의 신교가 아닌 가톨릭 구교를 믿었고, 그들은 주로 가족과 연고를 중시한다고도 한다. 어디 출신이며 어디서 자랐는지 그렇게들 궁금해한다. 어디 가나 그 연결고리 - 혹은 믿음의 벨트 - 는 있다.


이렇게 미국의 간단한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그 내용을 모르기 전에는 이 영화에 깔려 있는 폭력성, 안타까움의 맥락을 마음속으로 느끼기에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장 3시간 30분의 긴 영화를 보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데 구글링으로 위의 역사를 찾아보게 되었다. 마치 이는 영화가 작가 찰스 브랜드의 논픽션 <I heard you Paint houses>를 영화화했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불세출의 배우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도 담겨있음도 느껴지게 한다. 게다가 넷플렉스가 유통하다 보니 제대로 된 개봉관도 없었으며 작품성으로 오스카상의 후보에 오르지만 뛰어난 수상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결과로도 나타난다. 동양인과 흑인에 비하면 더할 것 없는 정착민이 된 것 같은 아이리시, 이탈리안이지만 그들이 그들만의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는 권력자와 영합하는 방식이던 반하는 방식이던 권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역설에 항상 자리하고 있다. 이는 하루 생을 사는 대부분의 인간과도 만나는 지점이다. 아마도 우리 모두 아이리시맨이기 때문은 아닐까.

movie_image.jpg


영화는 거의 죽음에 앞둔 로버트 시런(로버트 드니로)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에서 시작한다. 이후에 차를 몰고 있는 로버트와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의 모습과 그들의 부인이 차를 타고 있다. 러셀은 이탈리아 마피아 숨겨진 두목과 같다. 여러 연줄로 법조계는 물론 지역 전반의 대소사를 챙기고 있다. 그는 우연히 가스 스테이션에서 만났던 로버트를 기억했고 그가 아이리시였지만 2차 대전에 이탈리아에서 군생활했다는 것만으로도 혹은 그 외의 여러 이유 때문에 로버트에게 행동대장과 같은 중책을 맡긴다. 로버트는 페인트 하우스를 하는데, 페인트는 피로 벽을 물들인다는 의미이다. 필요한 사람을 죽이거나 협박해서 이탈리아 마피아 세계로 들어오게 된다. 그들은 끝까지 아주 신뢰하는 사이가 된다. 러셀이 죽을 때가 다 되어 교회에 가는 나약한 모습을 볼 때까지 관계는 이어진다. 평생의 동반자가 된 것.

movie_image (3).jpg


러셀(조 페시) 어딘가 낯이 익는다. 영화를 보면 그의 독특한 콧날이 인상적인데, 그는 한국에서는 영화 <나홀로 집에>에서 좀도둑으로 열연하는 배우이다. 그렇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로버트 드니로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 삼각편대를 이루어 1970-90년대 이탈리아 마피아 영화의 악역으로 자주 출몰한다. 이 영화에서도 그의 중량감은 대단한데, 2010년 영화계를 떠났다가 이번 영화 때문에 다시 나왔다고 한다. 그는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며 말로 해결하는 진정한 보스이다.

movie_image (2).jpg

나는 지미 호파 역의 알 파치노를 알아보지 못하고 "와 로버트 드 니로에게 밀리지 않는 엄청난 배우가 있구나" 싶었다. 예전에 액션 영화에서 그의 날카롭고 혹은 비열한 모습에 매료되었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양쪽 볼살이 축 쳐 저 있는 그의 모습에서는 미워할 수 없는 얼굴 표정은 물론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어떤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러셀은 로버트에게 지미의 보디가드 혹은 경호실장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한다. 시카고의 운송노동조합장으로 나오는데, 지미는 로버트를 끝까지 신뢰하고 로버트를 조합의 지부장 지휘까지 일임한다. 로버트와 같은 호텔을 쓰며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러셀과 달리 법조계 안팎의 인맥이 부족했거나 1960년대도 강력한 정치인이었던 케네디 가문의 피박을 받아서 감옥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같은 노동조합 출신 간부와 사소한 것으로 싸움이 나기도 하며 끝까지 자존심을 세운다. 출소한 뒤에도 그와 화해를 하지 않은 이유가 회의 때 15분이 늦었다는 것이나 회의 때 양복을 입지 않은 것 등의 이유이기도 했다.


movie_image (1).jpg


앞서 제시한 대로 이 영화는 지미 호파의 의문스러운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고, 나는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영화는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지미 호파는 누구에 의해서 죽는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묻히게 되고 지미 호파는 갑작스러운 살해를 당하지만, 러셀은 물론 로버트도 노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취약성을 드러낸다. 걷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되는 것은 물론 뇌졸중에 걸려 공 굴리기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 그들은 결국 모두 감옥에 가게 된다. 그리고 죽음을 목전에 두거나 죽음에 이르게 된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상당히 길지만 이것은 역사를 체화하고 있는 미국인에게는 상당한 감정이입으로 다가올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의 가까운 가족 혹은 이웃, 친구 중에서 아이리시, 이탈리안 혹은 이민자가 되어보지 않은 이들이 있을까. 또한 2차 대전이라는 서구 근대적 문명의 심각한 오점을 남긴 역사적 사건은 인간이 신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은 그저 몸뚱이를 가진 한계적 존재임을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이것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개편이 1970년대 오일쇼크가 나기 전까지 엄청난 활황, 위대한 아메리카를 열게 된다고도 말하지만 그 안에는 아주 복잡한 개인적 부족적 사회적 사건들이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존. F. 케네디는 미국인들에게 에이브러험 링컨과 유사한 정도의 추앙을 받고 있는 지도자이다. 그는 소위 백인 극우세력들에게 암살되었다고도 한다. 아이리시에 가톨릭 신자였던 그의 이력상 이해할 만도 하지만 실제 그를 암살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기를 소개했던 리하비 오스왈드에게 죽임을 당한다. 미국의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케네디가 흑인 인권 운동 찬성을 하면서도 냉전시대 쿠바의 미사일 위기를 넘기려고 했던 것은 그 시대가 경제적으로 아무리 번영의 시기였다고는 하나 냉전에 가려진 국가 내부의 반동들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던 또한 복잡한 시기였음을 알려준다. 영화에서는 케네디의 죽음에 무엇인가 이탈리아 마피아 세력이 연관된 것은 아닌가 의문스러운 장면이 제시되기도 한다.


또한 레이건과 부시 등을 거치면서 급격히 경제 사조가 바뀌었고, 1960년대 노동조합의 엄청난 힘을 지금 미국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아마존이 시애틀의 본사를 세금 때문에 옮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다른 주에서 절세를 해주겠다며 유치 경쟁이 들어섰다는 것,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검사비용이 수백만 원에 이르거나 119 응급차만 불러도 2천만 원에 가까운 비용이 발생하는 등, 수많은 격변에서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차별과 불평등은 또 다른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리시맨이 상징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인간 삶의 무상함이기도 하지만 차별받았던 이들이 가졌던 언어 없음의 현상이 여전히 21세기에도 자리 잡고 있음도 가리키고 있다.


이 영화는 미국 현대사와 연관된 점, 미국의 차별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인 점, 폭력성을 다루었지만 담백하게 기술하고 있는 점은 특이할만하고 이런 긴 영화를 몰입감 있게 만들었다는 것, 손짓하나 표정 하나가 모두 연기가 되는 농익은 대 배우들이 참여했다는 것에서 주목할만하고 한 두 번 더 돌려볼 영화라 생각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