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육아일기] 아이의 올 날들

결혼 12년 차 육아 0년 차

몇 달 전 "이게 아이예요"라고 가리켜야 알 수 있었던 아이의 몸은 어느새 초음파 한 화면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초음파 측정으로 머리 둘레, 복부 둘레, 허벅지 길이와 평균 밀도를 곱한 값으로 체중을 추측한다. 성큼이는 이제 2.7kg이 넘었다. 만삭이 된 36주부터 산부인과 검진 간격이 2주에서 1주로 좁혀진다. 의사 선생님은 언제 아이가 나와도 상관없다고 한다. 아늑한 엄마의 몸에서 세상에 튀어져 나올 때만큼 삶에서 급격한 변화는 없다. 그 과정을 통과한 것만으로도 특별한 일이다. 누구라도 하루 살아가는 것과 살아온 것은 귀중한 일이다. 그런데 성큼이는 과거는 없었고 미래만 있는 존재 같다. 인간의 인식 상에서 망각은 삶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면서도 어느 순간에 삶의 불안을 느끼는 틈이기도 하다. 나와 아내는 벌써부터 아이가 어떻게 세상에 나와서 어떻게 자랄지를 고민한다. 아마도 자라면서 엄마의 몸을 떠나고 다시금 가족을 떠나게 된다. 미래로 존재를 가끔씩 상상하고, 지난 일들은 한 존재를 가끔씩 구성한다.


서른 살에 아이를 낳은 친구는 자녀의 중학교 진학을 고민한다. 고민의 이유는 다양하다. 미래의 효용성을 고려하고 효용대비 비용을 검토하기도 한다. 비용과 효용이라는 날카로운 단어를 써서 그렇지 달리 말하면 형편을 생각해 아이에게 사랑의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이제 9살 아이의 아빠는 지난해 코로나 때문에 사뭇 달라진 초등학교 입학이 부모로서 참 안타까웠다면서 실제 등교하면 적응을 잘할까 고민한다. 말대꾸를 시작해서 아빠에게 말 한마디 안 지려고 한다는 4살 난 아이의 모습도 있다. 나는 이제 한 살이 되는 아이가 있다. 아마도 나와 아내의 존재는 만남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지듯이 귀중한 존재는 서로의 시간을 멈추게 한다. 곁에 없으면 곁에 있던 때를 떠올리고 곁에 있으면 다른 것은 떠오르지 않는다. 여러모로 시간은 존재 앞에서 왜곡된다.


존재는 공통의 자원인 시간을 왜곡하고 숫자를 무너뜨리게 된다. 아이의 바깥은 초현실주의 회화처럼 구부러진다. 세상에 그런 난시가 없다. 눈 앞이 아득해지거나 뿌옇게 흐려질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 제시하는 '평균'의 근원은 인구 통계와 노동력 제공을 위한 국가 통치 수단이다. 키가 크다 작다, 몸무게가 많다 적다, 지능이 낮다 높다 모두 비교의 방식이다. 모든 꾸밈말은 비교급이다. 평균은 비교의 대표적인 잣대이다. 성큼 이의 몸무게와 여러 둘레 길이는 모두 그 주차의 평균값에 근접해 있다. 아내와 나는 다행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각자의 태어날 때 체중을 기억해 낸다. 이 평균이 과연 맞는 것인지, 아내와 내 키가 동일 나이 또래의 평균이니까 제대로 크고 있는 것인가를 고민한다. 혹 주차별 체중이 평균보다 늘어나게 되면 너무 무거워지는 것은 아닌가, 아이 낳기가 어려운 것은 아닌가 고민한다.


사실 고민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다. 아이와 자신을 위해 아내는 먹고 쉬며 운동한다. 이제 중학교 초등학교 아이가 있는 누이의 말처럼 부모는 '항상 최선'이다. 기술의 발달로 출산의 위험성이 감소했다면 인간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중간은 가고자 하는 욕망에 인간을 끼워 맞추려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끼워 맞춤은 여전히 벗어나게 된다. 다른 일의 비용과 효용 앞에 날카로웠던 친구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에서도 알게 된다. 모든 인간관계 중에서 죽었다가 깨어나도 사라지지 관계가 아이였다는 상상할 수 없는 다가옴을 토로했던 누군가의 말도 생각난다. 이제 중학생, 초등학교,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의 모든 부모는 공통적으로 '먹는 것'에 대해 비용을 아끼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것이 최소한에 성립된 아이 사랑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평균 앞에서 얼마나 나는 판단중지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다 갖출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꾸역꾸역 중간만이라도 챙기고 싶은 마음을 평균이라며 평가절하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고민이 아이의 애착과 분리, 의존과 자립을 구성해 나갈 것이다. 그 무엇이든 아이의 날들을 구성한다. 눈으로 살피기 어려웠던 그 점은 이미 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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