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육아일기] 열흘, 한 자리만 남아있음

결혼 12년 차 육아 0년 차

아내와 현대백화점에서 연어초밥과 전복 알탕을 시켜먹었다. 아내는 임신하고 즐겨 먹던 초밥을 더 자주 먹고 싶어 했고 나는 이곳 대구탕 국물이 시원해서 찾았다. 아무래도 출산 전에 마지막으로 백화점에 온 것 같다. 오늘 더 든든해진 뱃속 성큼이와 함께 유모차 매장을 들렀다. 유모차는 유아복 매장에서 몇 개 브랜드만 팔고 있었는데 가격도 비쌌다. 일하시는 분은 모두 언제 출산인지를 물어보고 자세한 영업활동에 들어갔다. 이제 곧 출산이라고 하니까 그런데 왜 휴대용 유모차를 벌써 사느냐고 한다. 혹은 2월 14일부터 월말까지 행사가 있으니 먼저 예약을 하라고 한다. 조금씩 바뀌는 상품과 예상보다 비싼 가격 앞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한다.


다시 10층에 식당가에서 밀크 빙수를 시켜먹었다. 예전에는 밥 먹고 빙수까지 한 번에 코스였지만 아내는 조금씩 자주 먹는 것이 낫다면서 식당 10층과 유모차 매장 8층을 왔다 갔다 하자고 했다. 부쩍 느려진 걸음은 좀 더 자세히 주변을 보게 도와줬다. 빙수를 먹다가 아내가 내 볼을 만진다. 나는 아내 볼을 만지고 머리가 아래 놓인 성큼이의 볼이 있을 것 같은 아내 배를 만졌다. 빙수 집에 앉아서 금세 빙수 한 그릇을 비우고 나는 양이 줄어든 게 아니냐고 했다. 매운 음식과 찬 음식을 아이 낳기 전에 많이 먹어 놓으라고 했단다. 이제 모유를 시작하면 먹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남아있는 열흘,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는 시간이다.


초등학교 2학년 올라가는 아이가 있는 친구가 어제 늦둥이 아이를 낳았다. 보통 주요 부위 사진을 스마일 등으로 가리는데 이 친구는 흥분했는지 그대로 노출시키며 둘째의 첫 독사진을 보내줬다. 단톡 방에서는 나도 다시 낳고 싶다면서, 자기가 낳지도 않을 아이 사진에 연신 댓글이 달린다. 이제 중학생이 다 되는 아이를 가진 친구부터 세 살 배기 아이가 있는 아빠까지 딸 아들을 완성했다는 축하 등으로 마흔 초반 아저씨들이 모여있는 단톡 방이 오랜만에 달아올랐다. 나도 남의 아이에 대해 축하할 뿐 관심 없었던 지난날과 달리 아이 사진을 보게 된다. 그 울음과 몸짓에 눈이 간다. 역시 몸은 마음보다 앞서 있다. 이 친구는 우리보다 예정일이 늦었는데도 더 먼저 태어났다. 2월 4일이 그의 생일이 되었다. 2월 15일이 아마도 성큼이의 생일이 될 것 같다. 큰 진통만 없다면, 제왕절개 날짜와 시간을 그때로 잡아놨다.


조금 설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열흘이 남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12년 간 아이를 조용히 기다려온 어머니가 단톡 방에서 묘한 기분이라 신다. 그간 냉정한 아들 때문에 아이에 대한 발언을 하기가 어려웠던 부모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어차피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다. 코로나 때문에 조리원 출입 등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참 아쉬운 눈치이다. 아마도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볼 수 있겠지. 단톡 방 메시지를 확인하고 백화점에서 대학원까지 조심히 걸어서 책을 반납했다. 뱃속의 성큼이와 마지막 학교 길이다. 아내는 "나중에 성큼이랑 유모차 끌고 여기 같이 오겠네"라고 했다. 그때쯤 나는 논문에 통과했을까, 통과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나 자기만의 상상에 빠졌다. 겨울치고 온도는 낮지 않았지만 바람이 불어 추워졌다. 그래도 예전처럼 빨리 걸어서 추위를 피할 수가 없다. 아내가 걸음을 재촉하기 전까지 바람과 익숙해진다. 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에 건널목 신호가 켜졌고 40초가 넘게 남았다. 예전에는 정문까지 그리고 건널목까지 뛰어 건넜지만 지금은 정문에도 도착하지 못한다. 아마도 걸음걸이뿐만 아니라 삶의 무거움과 진지함도 이럴 것 같다. 몇 년간 아이의 걸음에 맞춰야 할 것이고 똑같은 내용의 콘텐츠를 반복해서 봐야 할 것이다. 반복과 느림을 어색하게 생각했던 나에게 남은 열흘은 천천히 더 스며들게 될 것이며 그때는 조금 육아에 어울리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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