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육아일기] 아이의 물품

결혼 12년 차 육아 0년 차

아이가 한 번도 사달라고 한 적 없는 물건이 집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아이의 물건을 구한다. 아내는 정보원 여럿이 있다. 그들은 아내보다 먼저 아이를 낳은 처제부터 학교 친구, 일하면서 만난 동료들 그리고 수많은 온라인 정보원이다. 요즘과 같은 소비의 시대에는 다양한 광고, 체험이 결부된 판촉활동이 진행된다. 공짜로 주는 물건들, 일단 써보라며 배송비도 받지 않은 유아용품이 많다. 아내는 몸에 닿는 물건이나 일부 소모품을 제외하고는 전 국민의 공유 사이트가 되어버린 '당근 마켓'에서 중고 물품을 찾는다.


'육아는 템빨' 구호는 여기저기서 피어난다. 아기체육관 - 직접 보면 아이가 아등바등하며 뻗은 손에 이런저런 소리가 나고 거울이 미쳐 오감을 자극하는 상당히 감각적인 물품이다 - , 모빌, 흔들의자 등은 모두 당근 마켓에서 저가로 구매했다. 층간 소음을 고려한 방바닥 매트를 교환할 때 홍제동에서 무악재 근처 아파트까지 15분 정도를 매트를 들고 운동삼아 걸어서 이동했다. 무게도 있었지만 아내가 이제 좀 뿌듯하지 않으냐며 격려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에게 스토케 유모차를 받았고 부대용품인 유모차 커버, 부모 장갑 등을 받았다. 스타벅스 쿠폰을 몇 장 줬더니 친구가 보답이 많다고 한다. 친한 형님은 가격 생각 말고 유모차 사 줄 테니 모델명을 알려달라고 한다.


가습기는 기화식과 초음파식, 가열식이 있는데 가열식은 열이 나서 아이가 혹시 만질까 봐 뺐다. 이번 육아 물품의 상당 비용을 가습기 구매에 썼다. 집안이 상당히 쾌적해졌다. 아내는 일주일에 무조건 1회 자동 청소, 간이 청소를 하고 한 달에는 꼼꼼히 청소해야 한다고 했다. 아내가 항상 청소할 때마다 어디가 더러운지 모르겠다며 청소를 자꾸 미루던 나의 게으름에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매일 가습기에 물을 갈면서 샤워기로 전날의 가습기 물 때를 날려내고 물을 넣는다. 미래의 상쾌함을 위해 현재의 귀찮음을 바꿔내야 한다.

물건의 절정에는 몸에 두르는 것이 있다. 우리는 결혼을 일찍 하고 출산을 늦게 하기 때문에 이미 동년배의 아이는 훌쩍 커버렸다. 먼저 육아를 한 사람들이 쓸만한 옷을 여기저기서 준다. 사이즈가 제각각이다. 아내는 6개월 미만, 12개월, 24개월 정도로 나누어서 옷을 정리한다. 속싸개, 걷싸개, 손싸개, 발싸개가 있다. 동네 산부인과에 등록하자마자 발싸개를 받는다. 이 자그마한 것에 더 자그마한 발이 들어간다. 자기가 뻗은 손에 자기가 몸을 쳐서 자다가 깨는 것을 막는 옷도 있다. 몇 번을 되뇐다 '우리는 옷 사지 말자'


우리 집은 '미니멀 라이프'를 모토로 하고 있어 언제나 짐을 줄이려고 한다. 육아 물품의 대원칙은 입지 않는 엄마 아빠의 물품을 정리하고 그곳에 아이의 물품 놓을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나는 정리도 잘 못하면서 버리기도 싫어하는 사람이라 아내가 여간 고생이다. 결혼할 때 커다란 책장과 긴 카페식 책상만 있으면 된다고 했었는데, 이미 책장에는 책이 가득 차서 앞 뒤로 두 겹으로 쌓고 세로로 쌓인 책 위에 가로로 책을 올려있다. 며칠을 미루다가 아내가 몇 권을 빼놓았다. 더 빼야 한다고, 맨 나중에 매를 맞는 아이처럼 내 움직임이 굼뜨다. 입이 서너 배 나와있다. 그래도 버릴 책이 서너 박스는 족히 채우고도 남는다. 미련이 남은 출력물들도 아내가 원한만큼은 버리지 못했다. 책장이 조금 여유로워졌다. 옷도 그렇다. 코로나 때문인지 겨울에 특별히 입은 옷이 없다. 점퍼 두세 개와 면티, 그리고 강의가 있을 때 입은 정장 정도밖에 없다. 1년이 넘게 묵혀둔 옷을 다 꺼낸다. 그 옷은 녹색의 재활용 통으로 직행한다. 물품이 빠지고 빈 곳이 생기며 다시금 그곳에는 아이의 물건이 들어간다.


정말 필요한 것만 들여놓았다고 한다. 책장 하단을 가린 육아 물품들이 이제 몇 달만 지나면 힘들게 들고 온 매트 위에 놓이고 아이는 그곳에서 버둥거리며 우리는 똥오줌을 받아내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성인의 냄새가 난다며 성장과 고역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아이는 웃음과 울음을 터트릴 것이다. 아이의 인식 속에 어느 한 켠 남아있을 것으로 추측하는 아이의 바깥이 구성된다. 자타가 구분되지 않은 소우주인 아이는 모두가 자기이다. 그곳에는 또 다른 아이가 버둥거렸던 기억이 있다. 아이를 감싸던 손길이 묻어있다. 내 기억 어딘가에 있을 내 옷과 책들은 재활용센터로 혹은 다른 곳으로 갔다. 다른 가공과 부식의 절차를 거쳐서 다른 모양으로 산다. 인간을 그래서 별이라 부르나 보다. 풍화작용 속에서 아이는 자기의 에너지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 옆에 아내와 내가 있다. 육아는 상당한 자기 계발이 되리라 믿는다. 연료는 물품을 움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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