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2년 차 육아 0년 차
아이가 아내 몸속에 있다. 착상란에서 세포기를 거치고 낭배기를 지나가며 수많은 세포분열과 확장이 일어난다. 세포는 몸이 되고 아이가 된다. 아내 몸이 늘어난다. 아내가 가장 살쪘었다는 고3의 몸무게를 넘어간 것은 오래된 일이다. 아내는 늘어나는 체중이 평균 산모 체중보다 좀 덜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아내 마음대로 됐으면 좋겠다.
유선이 발달하기 위해서인지 유두가 아프다고 한다. 가슴이 커진다. 손발의 마디가 쑤시고 가끔 저린다고 한다. 침대에 누워 아내 몸을 주무르거나 의자에 앉아서 내 쪽으로 다리를 뻗어 마사지를 한다. 아이는 자라며 아내의 몸속 장기들과 만난다. 아이의 성장은 엄마 몸의 확장으로 일어난다. 소화의 효율과 기회가 줄어든다. 탄산수를 부쩍 많이 마셨다. 손마디에 힘이 줄어드는지 탄산수 캔을 나에게 내민다. 나는 느낄 수 없는 배뭉침이 일어난다. 아이가 부쩍 커지는 7개월 이후에 아랫배 살이 튼다. 성장기에 엉덩이 살이나 무릎이 터지던 때와 비슷한 무늬가 생긴다. 인터넷의 발달이 삶을 행복하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동일 시기 몸의 변화를 느낀 임산부들의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버팀목인 것 같다. 맘스홀릭에는 온갖 사연이 올라온다고 한다. 아내는 눈팅을 하면서 왜 저런 질문을 하지라고 물을 때도 있지만 몸의 변화가 나만의 사건이 아니라는 것에 힘을 얻는다. 배가 불어날수록 임산부들이 자신을 거울에 비춰서 사진으로 올린다. 아내는 저 사진은 이유도 아니라며 8,9개월이 되면 상상 이상으로 배가 나온다고 말한다.
몸은 수많은 진화의 기억이 담겨있다. 아이가 클수록 자궁의 넓이가 늘어나고 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혹은 몸의 팽창을 맞추기 위해 살과 근육들의 모양이 조금씩 변한다. 영장류가 700만 년 전 지구 상에 출현했다고 하는데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유전자에는 그 기록과 변형이 남아있다. 몸의 변화는 호르몬의 변화와 함께 한다. 신체의 시계는 단절된 지표를 중심으로 측정하는 근대 과학이 여전히 밝혀내지 못하며 개인의 몸에 최적화되어있다. 아내는 내가 술을 먹어도 화가 덜난 게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의 발달은 이성의 성장이 아닌 몸의 변화에서 왔다. 인간이 네 발 달린 동물보다 두 발로 서게 되면 속도를 내기 힘들고 아울러 몸 구동의 핵심인 심장이 바로 드러나게 된다. 반면 두 손이 자유로워지고 앞을 보기 위해 고개를 꺾어서 들 필요가 없다. 걸으면서 시야가 확보되고 많은 정보가 들어온다.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물건을 다루거나 조작하는 활동이 발달한다. 시각과 촉각의 발달은 몸의 변화와 연결된다. 인간의 지성 발달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관의 발달일 수 있다. 그리고 아이의 생산 기능을 갖춘 여성은 몸이 무거워질수록 동물에게 습격당하기가 쉽다.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10개월 동안 아이를 몸속에서 기른다. 이후에 태어난 아이는 유일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바로 일어설 수 있는 동물의 태아 습성과 달리 누군가 보듬지 않으면 죽는다. 육아 여부에 따라 고등 사고가 가능한 인간이 된다. 임신 중의 몸의 변화, 그리고 장기간 육아는 생명을 이어나가려는 인간의 가장 큰 도전이다.
9개월 지나 만삭이 되어 아내 걸음걸이도 부쩍 느려졌다. 얼마 전 호텔에서 하룻밤을 잤다. 언덕에 있는 호텔에 올라가는 길, 여간 걸음이 더디다. 천천히 걷기가 더 어려운 오르막 길이다. 아내가 '아이고 힘드네'를 조용히 내뱉는다. 아내 손을 잡고 걸을 때 나도 모르게 손을 당겼나 보다. 잡던 손을 놓는다. 매일의 변화가 아내에게 오르막 길이다. 앞에 무엇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길이다. 몸은 목적이면서 수단이 된다. 아이와 엄마는 몸을 나눈다. 둘은 하나이면서 '길'이고 '몸'이 된다. 천천히 걷겠다며 아내의 손을 다시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