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2년 차 육아 0년 차
어제 마지막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다. 아내와 손잡고 예약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걸어갔다. 병원 문 앞에서 QR 체크인을 하고 체온을 잰다. 번호표를 뽑고 진료 접수를 한다. 아내는 체중과 혈압을 잰다. 2층으로 올라가서 소변검사를 한다. 5층으로 올라가서 태동 검사를 한다. 지난번 검사에는 성큼이가 잘 움직이지 않아서 먹을 것도 일부러 싸왔는데 어제는 잘 움직였다. 태동 검사를 마치고 4층의 진료실에 들어갔다. 오늘은 제왕절개 출산 전의 마지막 진료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다. 개복 수술의 경험을 묻는다. 그리고 자궁이 9개 정도의 피부 조직을 가로질러서 있다는 말을 듣는다. 현재 아이의 위치나 자궁 태반의 정도도 정상적이라서 큰 출혈은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수술 중에 안전을 위한 다양한 약품을 활용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수술 동의서 설명을 듣는다.
초음파로 보는 아이의 마지막 사진이다. 아내가 눕는다. 배를 감싼 임산부용 레깅스를 허벅지 근처까지 내리고 초음파용 알로에 빛깔 크림을 복부에 바른다. 나는 아내의 머리 쪽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아내의 배가 불룩 커져있다. 아내는 3kg 수박을 담고 있으니 힘들다고 한다. 배가 크다. 아내 발끝 위에 화면 속 무채색의 아이가 있다. 회색과 더 짙은 회색 혹은 검은색이 보인다. 아이의 심장이 쿵쿵쿵쿵 보통의 성인보다 더 빨리 뛴다. 어떤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현재 인간의 조직이 생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이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카락도 자랐다. 머리도 배 둘레도 허벅지도 거의 평균값이다. 크기는 의사의 측정에 따라서 조금씩 변하지만 허벅지는 조금 긴 것 같아서 괜한 기대가 된다. 체중은 3kg이 좀 넘는다고 한다. 그간 몸의 이상 없이 잘 있어준 아내와 아이에게 감사했다.
아내는 휴직한 일터에 갔다. PC에 필요 없는 파일을 없애고 최대한 자신의 공간을 쓸 사람을 위해 정리를 마친다. 가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감사한 사람에게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 아내가 출산 전 마지막으로 온 일터이다. 이틀 전에 명절에는 시댁이나 친정 방문을 하지 않으려고 해서 집에서 먹으려고 시장에서 돼지갈비를 사서 재웠다. 맛이 좀 들었겠다 싶어서 갈비구이랑 간단히 밥을 먹었다. 며칠 뒤면 간단한 식사조차 신경 써야 할 사람이 생긴다.
오늘은 아이 없이 보내는 마지막 명절이다. 4일이 지나 태어나는 아이와 함께하는 삶과 4일 뒤가 마지막인 아내와 나만의 결혼생활이 겹친 오늘이다. 내일은 아내가 나와 둘이 보내는 마지막 아내의 생일이기도 하다. 아내의 30대의 마지막 생일이다. 아내의 25살부터 함께한 생일은 연애 3년, 결혼 12년 해서 15년 동안 함께 있었다. 내년 아내의 생일에 아이의 1주년, 돌을 생각하며 생일을 간단하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를 왜 낳아야 하는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 아내와 나, 모두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고는 못하지만 선뜻 나서서 낳자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여전히 준비와 노력이 부족한 나에 대해 아내는 사랑하고 있으나 실천이 부족한 현실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아이를 주저했다. 나는 왜라는 질문을 하며 내 입장을 고수하거나 불편한 일을 유예해왔다. 왜의 질문은 정답 맞추기가 아니라 해답을 찾기 위한 실천이어야 한다.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를 마지막으로 묻고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할 차례가 왔다.
여전히 내 미래는 불투명하다. 상당수의 것들을 유예해왔었고 그것의 집행은 하루하루의 실천에 담겨있다. 그 간 미뤄왔고 말로만 하겠다고 했던 일들이 있다. 그것을 차곡차곡 실천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매일 가습기에 물을 가는 것, 매주 가습기 청소를 하고, 매주 청소기를 돌리는 일이다. 술 먹는 횟수를 줄여야 하며 줄어드는 기억력과 사고력을 감안하면 금주의 지경에까지 가야 한다. 글을 쓸 때는 꼭 퇴고 일정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지만 먼저 아빠와 엄마가 된 사람들은 아이 앞에서 대부분의 것들이 무너지며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이 생기고 아이를 낳는 일은 굉장히 잘한 일이라고도 한다. 그 감정의 둑이 버티고 있는 마지막 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