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뒤 오후에는 아이가 아내의 몸에서 바깥으로 나온다. 물론 아이는 언제나 바깥과 닿아있었다. 인간의 몸이 어디까지인가 경계를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것처럼. '숨'은 살아있는 인간이 세계와 만나는 의무이지 권리이다. 입에서 항문까지 인간은 바깥과 단절되기 어렵다. 다만 내일은 아이가 개별적인 이름을 가진 하나의 존재로서 세계와 호흡하는 순간이다.
큰 일 앞에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었다. 수능 전날 저녁, 수능 문제 1회분의 절반을 풀었다. 답은 맞추지 않았다. 저녁을 먹었다. 집 바깥 장독대 위에 올라가서 밤하늘을 봤다. 밤하늘로 깊게 호흡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나의 부족함을 탓하면서도 별 수 없음을 알기도 했다. 삶의 문제가 동일한 잣대에 놓여서 잠시의 정답이 있는 듯했다. 역시 그것은 해답만 있는 삶의 시작이었다.
결혼식 전 날, 나는 친구들과 홍대에 갔다. 친구는 결혼식날 웨딩카인 폭스바겐 컨버터블 빨간 스포카를 몰고 왔다. 3명의 서른 살 남자들은 피쉬앤그릴 술 집에 들어가서 술을 마셨다. 결혼이 가장 빨랐던 나에게 친구들은 "이제 OOO이 끝났네, 마지막으로 오늘 불태워보자"라고 했다. 나는 딱 반 병만 마셨다. 두 친구를 두고 홍대입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이후로 술을 끊지도 못했으며 이들과의 관계도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삶은 계속되고 있으며 결혼은 연애의 끝도 연애의 완성도 아니었다. 당신과 계속된 관계가 있었다. 나는 미리 준비하지 않았고 환경에 놓이면 적응하려고 했다. 이기적인 방법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은근히 조용히, 남들보다 늦게 알아차리고 슬며시 체화하고 있었다.
세계의 일반적인 계기 앞에서 사람은 어느 만큼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그것보다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 자기만의 단계 속에서 당신 앞에 비친 나와 내 앞에 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루한 삶에서 그런 몇 가지 순간으로 삶을 지탱한다. 나는 기억도 할 수 없는 내가 태어난 날을 부모는 생일로 축하해왔다. 유치원 때 대각선으로 80미터도 되지 않은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며 결승선 테이프를 끊었던 때가 숨이 기억난다. 서울랜드 분수에서 물을 맞으며 누나와 숨이 터져라 웃었던 기억 옆에 부모의 울타리가 떠오른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졸업식 때마다 나는 입이 댓발은 나와있었고 울면서 자장면을 한 입에 가득히 넣고 있었다.
아내와의 첫 만남에 긴장과 더위로 분홍색 티셔츠 가슴골에 묻었던 땀이 기억난다. 첫인상이 이렇게 보이면 안 되는데 걱정했었다. 15년이 지나고 아내는 모유 수유를 하려고 제왕절개 전 날에 가슴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그 건물이 보이는 카페 2층 창가 자리에 앉았다. 아내가 있지만 보이지도 않는 건물에 자꾸 눈이 간다. 몸의 경계는 여전히 미완성이며 재구축된다. 숨이 쌓여 턱 막히던 때, 숨이 멎을 정도로 나를 잊던 때를 아내와 만들어 왔다. 아마도 그 날이 내일일지도 모르겠다. 세계는 계속되고 삶은 주눅들도록 은근히 나를 지탱하고 있다. 한 숨 터트리며 으앙 하고 울어버릴 그때부터 그 존재는 자꾸 눈길이 가고 손길이 갈 것이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생각났을 때 몸은 확장되며 관계는 이어진다. 나를 다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