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하루가 지났다. 24시간 전 아내와 집에 있었다. 지금은 병원이다. 아내는 제왕절개 수술을 앞두고 있어서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6시간 이후부터는 금식을 해야 했고 5시 넘어서 일어나서 요기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 나는 잠을 자려다가 앤 해서웨이가 나온 영화를 보다가 새벽 두 시 넘어까지 TV 앞에 있었다. 영화는 [다크 워터스]였는데 얼마 전에 개봉했던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처럼 기업 관료적 범죄에 대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기업이 몰래 불소가 함유된 폐수를 몰래 방류해서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암에 걸리거나 아이들 치아가 모두 착색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영화를 보면 몸이 움츠러들거나 몸 주변이 가려워지게 된다. 내가 꼭 그 일을 당하는 것처럼 혹은 현대 사회의 불안정성으로 내가 화학물질에 노출된 것 같기 때문이다.
너무 늦으면 아침에 밥을 챙겨줄 수 없으니 중간에 끄고 잠이 들었다. 다시 일어난 시간 5시가 좀 넘은 시간이다. 맵고 짠 음식은 갈증이 많이 나기 때문에 8시간 금식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 따뜻한 누룽지를 끓이고 집 반찬을 꺼냈다. 둘 다 한 그릇을 모두 비웠다. 아내가 짐 정리를 한단다. 물려받은 옷, 선물 받은 옷이 여기저기 있었는데 그것을 아이 개월 수 및 용도에 따라 분리하려고 했다. 준비가 서툴렀던 나는 그게 산부인과에 가져갈 물품인 줄 알고 빨리 정리하자고 보챘다. 그런데 산부인과에는 가재 수건과 물티슈만 있으면 된단다. 제왕절개 병원 1주와 산후조리원 2주를 포함해서 3주 뒤에 구분해도 되는 일을 알아서 구분하는 아내다. 한참 옷과 배냇 옷들을 정리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 둘 다 처음이기 때문에 속옷을 어떻게 가져가야할 지부터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최대한 다 들고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점심 무렵 집 정리를 마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아내의 배는 여전히 땅땅했다. 아내의 자궁 아래쪽에 아이의 머리가 있고 윗 배가 엉덩이일 텐데 모든 부위가 다 땅땅했다. 무거운 몸으로도 집안 쓰레기를 모아서 정리를 마친 아내를 보니 코 끝이 찡해졌다. 아무 말없이 아내에게 등을 돌리고 편한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병원까지는 걸어서 5분 안팎이다. 바람이 제법 쌨다. 3주 뒤면 아내가 입은 롱 패딩이 어색한 날씨가 되려나 생각했다. 병원 도착해서 수속은 금세 마치고 병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부단히 준비할 것이 많았다. 수술 복으로 갈아입어야 했고 혈압부터 항생제 알레르기 반응은 물론 수액도 맞았다. 바늘을 찌를 때마다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오후 3시가 넘어 수술실로 들어가려고 아내는 휠체어를 탔다. 휠체어 발받침에 아내의 맨발이 올려져 있다. 수술복 위에 분홍 가운 말고는 아내를 덮어줄 무엇도 없다. 아내의 흰 발을 보면서 나는 통상의 영화에서 나오는 아이 발자국이 생각났다. 맨 발을 보니 땅 같은 아득함이 몰려왔다. 왈칵 쏟아지는 감정이 아니라 조금씩 고조되는 기분이었다.
아내의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땄다. 아마도 이동 중에 머리채가 수술 장비에 끼는 것을 막으려는 방법 같다. 언젠가 나와 연애 때 했던 양 갈래 머리다. 아내의 왼쪽 갈래를 만지며 "잘하고 와"라고 조용히 얘기했다. 휠체어 바퀴가 돌아가고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 장면이 지금도 떠오르는 것은 그때가 가장 찡했기 때문이다.
제대혈을 받는 간호사분이 "수술 잘 끝났어요. 산모는 회복 중이고, 아이는 곧 신생아실에서 보실 수 있을 거예요"라고 했다. 20분 뒤에 신생아실에서 "OOO님 보호자분"을 부른다. 유리창 너머로 아이가 보인다. 아이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빨간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울고 있었으며 태지가 묻어있어 허연 빛이 돌면서도 붉은색 얼굴을 했다. 어색한 만남, 아이는 눈도 뜨지 못했다. 조금 웃음이 났다. 대부분 어안이 벙벙했다. 아내의 건강이 더 궁금했다. 20분 뒤 의사 선생님이 나와 수술 경과를 설명했다. "산모와 아이 다 문제없나요?" "수술에 조금 어려움은 있었는데 별일 없이 마무리됐어요. 다 이상 없습니다." 아내를 기다리기 시작하고 20분 뒤부터 대기 의자에서 일어나서 수술실 앞 좁은 공간을 왔다 갔다 했다. 마음의 움직거림을 참을 수가 없어서였다.
아직 아이에 대한 기쁨이나 열망은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회복실에서 아내가 나왔고 휠체어를 타고 갔다가 침대에 누워 병실로 복귀했다. 내일 오전까지 물도 마시지 못한다. 24시간 꼬박 아무것도 입에 넣지 못한다. 한 시간에 한두 번씩 간호사 분들이 다녀간다. 체온을 제고 더운지 추운지를 묻는다. 수술은 회복까지 계속되는 것 같다. 수액을 몇 번 갈아 낀다.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굳이 하지 않을 일들이다. 아내는 아이의 뺨을 두 번 정도 만져봤더니 느낌이 있었단다. 그 쪼그만 생명체가 이제 몸으로 우리에게 왔다. 그 움직임, 피부의 감촉이 없다면 아이를 느끼기 어렵기도 하다. 아내의 꼬박 하루 금식과 꼬박 하루가 지나 집이 아닌 병원에서 보내는 지금, 몸이 부딪히는 감촉이 생경함이 느껴진다. 아이는 엄마의 공간을 점유하다 생경한 신생아 실에 누워있다. 시간이 지나 아내의 발과 아내의 바늘 찔림처럼 나도 아이의 움츠러듬에 몸이 반응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 느끼지 못한 지금, 아내의 아프지 않은 회복을 빈다. 아내가 뒤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