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육아일기] 각자의 걸음마

결혼 12년 차 육아 0년 차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는 신생아실에 있다. 하루에 3번의 면회만 가능하다. 신생아실에 담당 선생님들이 면회시간에 인터폰으로 연락을 하면 신생아실 창문 블라인드를 열고 아이를 보여주신다. 아이는 첫날과 둘째 날 그리고 넷째 날 모두 얼굴이 다르다. 아이는 52cm, 3.03kg으로 태어나서 점점 더 몸이 자랄 것이다. 변함에 따라서 아이는 몸의 기억으로 혹은 누군가 말하는 생존의 본능으로 삶을 이끌어갈 것이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이 태어나고 3년 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다. 아내도 아이가 3년이 지나면 성인 뇌의 90% 정도 수준으로 완성이 된단다. 그 경험의 바탕에는 사랑과 헌신이 있고 이를 통해 애착이 생기고 그것은 인간 삶의 근본적인 불안감을 그나마 해소해준다. 아이는 이제 첫걸음마를 시작했다.


나는 아직 아이를 직접 만져보지 못했다. 아내는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나서 전신이 아닌 부분 마취를 해서 아이의 뺨을 한 손으로 만져봤단다. 그 묘한 기분이 있다고 한다. 몸의 감촉은 상당한 기억력을 갖는다. 이성과 관념 방식 이전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은 어색하다. 아이가 나온 뒤에 양가 어른들에게 전화를 하고 사람들에게 카톡을 보내고 SNS에 소식을 알렸다. 사람들은 "어때 기분 정말 좋지 않아?"라고 묻거나, "아빠"라고 불러야 무언가 감정이 일어날 것이니 아직은 무덤덤할 것이라고도 한다. 누구의 말처럼 나는 여전히 무덤덤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부추긴다. 혹은 자기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말한다. 정말 좋을 것이라고. 나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이 힘든 세상에서 삶을 이끌어가야 하는가, 나의 욕심으로 삶이 열어젖힌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를 보기만 해도 그런 생각은 사라지는 것 같다. 그것이던 저것이던 삶은 삶일 뿐이다. 그저 자기 생각대로 삶을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아이의 사진을 찍고 매일매일 달라지는 얼굴을 보며 혹은 "아빠랑 똑 닮았네"라는 말을 들으며 나와 아주 특별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이가 생겼음을 더 알게 된다. 아직 나는 감정의 걸음마 단계이다.


아내의 걸음마는 온몸과 마음을 거쳐 온다. 아내는 제왕절개 수술을 2월 15일에 하고 오늘 2월 18일이 되어서야 걸음걸이가 수월해졌다. 아내는 출산을 위해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처음 팔뚝에 수액을 맞는 굵은 바늘을 꼽았고, 난생처음 개복 수술을 감행했다. 항생제 알레르기를 확인하기 위해서 아픈 주사도 참아야 했다. 수술을 하려고 생전 처음 마취를 받았다. 2월 15일 오후 3시 30분에서 5시까지 배를 열어 아이를 꺼내고 다시 배를 닫았다. 마취를 받고 나서 회복실에 누워있었고, 혈전이 안 생기고 다리가 붓지 않으려고 꽉 끼는 압박 스타킹을 신었다. 수술을 마치고 5시 30분에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개복 수술한 곳에는 고통을 덜어주는 진통제 페인 부스터가 꽂혀있고, 자궁에서 나오는 혈, 오로를 막기 위해 어릴 때 이후 안 했던 기저귀를 해야 한다. 첫날은 움직이지도 못했다. 금식을 2월 15일 새벽 6시부터 했는데, 2월 16일 오후 12시가 되어서야 30시간 만에 미음을 먹을 수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면 배에 힘을 줘야 하는데 힘을 줄 수 없으니 병실의 침대 각도를 조절하고 그 각도에 의지해서 몸이 일어난다.


난 아이보다 아내가 훨씬 더 걱정이 된다. 2월 16일 저녁이 지나서야 죽을 먹을 수 있었다. 여전히 배에 힘은 들어가지 않았다. 이제 조금 움직이는 게 가능했는데 움직이고 눕는데도 시간이 3분씩 걸렸다. 손이나 어깨 말고는 힘을 쓸 수 없으니 몸을 움직이는 게 정말 어려웠다. 링거 바늘이 있는 쪽에 힘을 줘서 몸을 일으키다 보니 바늘 주변에 멍이 들기도 했다. 2월 16일 저녁에 소변줄을 떼고 처음으로 화장실 가서 소변을 볼 수 있었다. 발을 올리기가 어려워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약 2m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데도 발을 끌면서 천천히 이동을 했다. 몸에서 그간 아이를 소중히 성장시켰던 부분들이 떨어져 나와 패드와 옷을 적신다. 핏덩이가 떨어진다. 몸에 피가 흐르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서 죽도 삼켜야 한다. 2월 17일 자고 일어나서 드디어 신발을 끌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그래도 엉금 엉금이다. 방귀를 뀌었는데 정말 반가웠다. 아이의 걷는 모습은 몇 개월 후일 텐데, 출산을 통해 아내는 아이의 성장을 속성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수술 회복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 다양한 약품이 쓰이고 있고, 열도 오르락내리락한다. 몸은 그렇게 원상태로 복구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이런 고통과 몸의 변화가 있는 줄 아내는 미리부터 찾아서 글로 학습하고 있었지만 자기 몸의 처음 겪는 일들을 대응하기가 만만치 않다. 세 끼 밥이 나오는데 미역국이 점점 양이 늘어난다. 냉면 사발에 미역국이 나온다. 바지락 미역국 들깨 미역국 소고기 미역국 등등 다양하다. 2월 17일부터 걷게 되자 쉴 틈 없이 수유하러 내려오라는 전화가 신생아실에서 온다. 아내의 몸은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젖을 물리며 어색한 느낌을 나에게 말하지만 나는 전혀 알 수 없다. 서너 번 젖을 물리기 시도한다. 가슴은 더 커졌다. 아내가 2월 18일 가슴에 전혀 다른 느낌이 난다고 한다. 출산 뒤에는 나의 가슴이 모두의 가슴이 되어버린단다. 여기저기서 '젖 젖 젖'을 외친다고 한다. 여성은 출산을 통해 상당한 몸의 변화를 겪고, 구경꾼이며 조력자에 불과한 나는 걱정이 앞선다. 아내의 걸음마는 진하고 깊다.


나는 어떤 면에서 굉장히 게으르기도 한데 드물게 발 빠른 일이 있다. 아내와 혼인신고를 신혼여행 돌아와서 얼마 되지 않아 했다. 그리고 아이 출생신고를 2월 15일 생인데 2월 16일에 했다. 동사무소에서 아이 주민번호가 나왔다. 와, 신기하다. 주민등록등본에 아이의 이름이 나오고 변경 사유가 출생신고이다. 가족관계 증명서는 며칠 뒤에 업데이트되지만, 주민등록등본을 동사무소에서 뽑아서 도장 찍어 준다. 원본 같아서 다른 곳에 제출하지 않고 보존하려고 했다. 출생 자녀에 대한 국가적 배려로 다양한 수당이 지급되며 지방정부 차원의 세심한 지원도 있고 그것도 한꺼번에 신청했다. 다음날 2월 17일 아내 일터에 출생 증명 관련 서류를 보내고, 건강보험에 피부양자 등록도 했다.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 거의 대부분 마지막 날에 몰아하는 내가 가끔 날쌘돌이가 된다. 몸의 변화를 겪는 아내보다 훨씬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는 아이의 사회적 개체화 작업의 걸음마를 시작한다. 그런 작업을 통해 아이는 내 마음속으로 더욱 성큼 들어온다.


아내가 젖이 나온다. 때마침 신생아실에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첫 수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아이의 시선은 이제 겨우 엄마 젖을 찾을 시야라고 한다. 두 모녀, 꼭 성공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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