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2년 차 육아 0년 차
이제 산후조리원에 있은지 9일이 되었다. 5일이 지나면 집으로 간다. 산후조리원은 휴식을 준비하는 곳이기보다 아이를 기르는 연습을 하는 곳이다. 일과가 녹녹지 않다. 아내의 스케줄을 새벽부터 시작된다. 보통 6시에서 7시 사이에 젖을 먹이러 신생아실로 내려간다. 젖은 보통 30분 이상 먹인다. 그리고 8시에 아침 식사를 한다. 미역국이 주를 이루고 매운 음식은 없다. 10시쯤 간식이 온다. 과일, 와플, 우유, 죽 등 다양하다. 10시에서 11시는 모자 동실이다. 아이가 산후조리원으로 온다. 보통 한 시간보다 오래 머문다. 가능하면 수유를 하려고 한다. 아이가 가면 곧 12시에 점심이 온다. 밥을 먹는다. 다시 1시 조금 넘어 간식이 온다. 그리고 2시 전후에 또 젖을 주러 간다. 때때로 가슴 마사지가 있거나 산후 마사지가 있다. 5시 저녁밥이 올 때 즈음 아이가 또 앙 하고 운다. 아이 밥(젖)을 주러 가다가 아내의 밥이 식을 때가 있다. 그리고 6시에 간식이 나온다. 7시 30분에서 8시 30분이 모자동실이다. 아이가 신생아실에서 온다. 보통 그때도 젖을 먹이려고 하고 9시가 다되어서 아이가 다시 신생아실로 간다. 보통 아이가 씻는 10시나 11시 정도에 젖을 더 먹이러 아내는 신생아실로 내려간다. 새벽 수유 시간을 신생아실 담당자께 얘기하고 아내는 일과를 마친다. 6번의 식사, 그리고 5번의 수유, 2번의 모자동실이 있다. 쉴틈이 없다.
산후조리원이 집과 다른 것은 야간 시간에 아이를 돌봐준다는 것과 수유하는 것 이외의 일들을 대신해준다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아내는 중간중간 유축을 해야 하고 잠잘 시간도 많지 않다. 다행히 아이는 태어난 지 14일밖에 안돼서 속단할 수 없지만 까탈스럽지 않은 것 같다.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를 가는 일 말고 투정 부리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모자동실이 되면 아이를 아기 침대에 눕히고 전신을 쓰다듬는다. 아이의 몸을 감싸는 속싸개 위에 이불이 덥혀있는 상태에서 가슴에서 배까지 손으로 쓸어내린다. 5초에 한 번은 하니까 1분에 12회, 60분이면 720회 정도를 한다. 반복하는 것을 싫어하는 내 성격상 아이를 쓰다듬든 일은 반복은 아닌 것 같다. 아이는 오만가지의 표정을 짓는다. 나는 처음에는 아이를 만지지 못하다가 이제 가끔 볼에 뽀뽀를 하며 손가락으로 아이의 부드러운 볼을 만지기도 한다. 아이에게 말을 건다. 하루도 같은 시간도 없고 한 번도 같은 표정은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아이를 다루는 방식은 서투르다. 모자동실이 끝날 때쯤 아이가 가끔 운다. 정성을 다해서 어르고 달래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 산후조리원 전문가 선생님들이 아이를 안으면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그치거나 울음이 잦아든다. 몸의 언어는 솔직하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내 몸이다. 산후조리원에서는 딱 부러지는 정답이 없음을 목격할 수 있다. 온갖 자기화된 지식과 경험, 전통과 현재를 가로지르는 최적화가 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방식은 몸짓이 동원되고 정량화는 불가능하다. 몸으로 표현하는 아이 앞에서 숙연해지지 않아도 솔직해지는 것은 삶이 가진 마지막 윤리적 토대일 수도 있다. 아이의 몸을 감싸는 옷부터, 속싸개를 매는 방식, 겉싸개를 입히는 방식, 가재 수건을 어디에 놓을 것이냐까지 '아이가 편해 보이잖아요'라는 말에 모두 수렴된다. 아이가 젖을 엄마의 가슴 한쪽을 20분 물었다가 다시금 다른 쪽을 물어야 한다는 점이나. 그렇다고 아이가 굳이 젖에 입을 떼지 않는데 다른 가슴으로 옮길 필요가 없다는 식의 그런 여유와 잔여의 방식이 많다. 젖이 잘 나오는 방식도 오만가지의 요법이 있고, 젖이 엄마가 누워서 아이를 먹일 정도라거나 젖이 어떤 종류이냐부터 젖이 잘 나오는 가슴이다까지 산후조리원의 방식은 상당히 비체계적 최적화 속에서 개인의 역량이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산후조리 원장과 수유 실장, 그리고 아이를 보는 선생님들까지 명확한 직급체계가 있다기보다 대부분의 영역에 있어서 서로 분담이 가능한 것 같다. 지시와 통제보다 협력과 협업에 가까워 보인다. '아이를 본다'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기술이 아니라 전반적이며 전체적이고 상황과 맥락을 겸비한 고도의 최적한 역량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움직인다는 말이 생각나지만 동시에 이런 엄청난 일이 어떠한 가치로 사회에서 매겨지고 있는가가 궁금해진다. 산후조리원의 일은 반복되지만 한 번도 동일한 적이 없다. 인간을 가장 밀착한 곳에서 다루는 곳이다. 민낯의 아이가 꾸며진 인간을 만날 수 없다. 아이는 손길의 귀중함을 느낀다. 인간이 모든 정신과 형이상학과 가장 다른 점, 바로 '몸'을 지니고 '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몸의 인간 앞에서 조금 더 나는 숙연해지고 아이에게 조금씩 스며들어가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