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2년 차 육아 0년 차
2주 전 설날 저녁에 근처 사는 친구와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명절이 되었으니 술 한잔 해야지? 어서 와", "형님 빨리 오세요." 그들은 평소에 하지도 않는 영상통화를 연결했다. 나는 불 꺼진 안방 침대에서 아내와 함께 누워있었다. 나는 있지만 영상통화 화면에서 나는 없는 듯 까맣게 나왔다. 나는 얼떨결에 음성통화를 했다. "이틀 뒤 애나와, 잘들 놀아" "알았어." 1분도 되지 않아 전화를 끊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바깥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었던 나는 약속 거절을 잘 못했다. 혹은 잘 안 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나온다는 말에 친구들도 입을 다물었고 나는 마음속에 약속을 단칼에 거절하는 나 자신의 어색함을 숨겼다.
지난 주말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기띠 하나 사놨어. 와이프가 신경 써서 골랐어. 곧 줄게." 7살 아이가 있는 친구는 설날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7살 딸아이와 함께 우리 집에 잠깐 들른 친구는 사과 한 바구니와 아기띠를 들고 왔다. 나는 어머니가 며느리가 좋아할까 노심초사 고른 아보카도와 애플망고를 친구에게 줬다. 여전히 외국 과일은 어머니에게는 드물고 낯설기 때문에 귀해 보일 수 있다. 친구는 나에게 딸의 짜파게티를 주문하고 그의 몫으로 1.5개의 비빔면을 부탁했다. 특히 딸의 짜파게티에는 건더기 수프가 들어가지 않는 것을 강조했다. 점심을 바로 먹고서도 나는 그와 한 개 반씩 나눠 먹으려 비빔면을 3개 끓여서 라면을 끓였고, 딸의 짜파게티를 정갈하게 담아냈다. 내가 보기에 엄청 자란 딸이 아버지에게 꼭 붙어있음이 보인다. 아버지의 몸은 딸에게 철봉이 되고 그네가 되고 정글짐이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의 몸이 놀이의 터가 되는 광경을 바라봤다. 마지막에는 딸과 1대 1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데 그는 동네 벽이 되고 술래가 되었다. 딸이 살금살금 걸어와서 그의 몸을 쳤다. 그는 딸의 터치에 매우 놀란 척을 했다. 어색한 것 딱 질색이고 때론 날카로운 친구가 무뎌지고 멍청해지는 모습을 본다. 나는 어느 만큼 아빠가 될만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된다는 것은 단절을 의미한다. 나머지 인간됨을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꼿꼿이 유지할 수수도 없다. 그것에는 자연스러움과 억지가 결합되어 있다. 아내는 몸의 변화를 체감하며 자연스럽게 엄마 인간이 되어간다. 아내 몸의 어떤 부분에서 젖이 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젖이 나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피를 흘리는 느낌인가? 땀이 나는 것 같은가? 아이의 입이 아내의 유륜과 유두를 앙하고 문다. 아이의 입은 여느 진공청소기보다 강력한 힘을 낸다. 아내의 몸과 아이의 몸이 만나는 공간에 아이의 혼신을 다한 힘이 작용한다. 아내는 세 끼 모두 미역국을 먹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젖을 만들어낸다. 제왕절개 수술 후 5일, 그리고 조리원에서 7일을 보내고 있는데 아내의 젖은 공공재가 되어버린다. 제왕절개 수술이 회복될 무렵부터 사람들은 젖을 묻는다. 처음 젖몸살을 앓는다. 내가 만져보니 가슴이 딱딱해지는 느낌이다. 무엇인가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나는 유튜브를 보고 아내의 가슴을 마사지한다. 아내의 고통과 걱정을 명확히 알 수 없다. 아내는 그것보다 다른 걱정도 해야 한다. 젖은 잘 나오는 것일까, 아이에게 좋은 젖일까 등등을. 분홍색과 자주색 중간쯤의 빛깔을 가진 옷을 입은 산후조리원의 젖 전문가들이 매일 병실과 산후조리원에 들른다. 가슴 마사지 전문가들이 젖을 쥐어뜯는 것 같다고 한다. 옅게 멍도 들었다. 그들은 아내의 가슴을 기탄없이 만진다. 아내는 그런 터치를 좋아하지 않는데 아내의 몸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세 시간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으면 유축기를 가슴에 꽂아야 한다. 산후 조리원 옷은 유난히 옷 중앙의 단추가 가슴 아래까지 내려와 있다. 가슴까지 깊이 파진 옷을 좋아하지 않았던 아내에게 복장 선택의 자유도 사라진다. 자주 바깥으로 가슴을 내놓는다. 다행히 젖 양도 늘어나고 아이도 잘 먹는다. 아이의 50일이 식목일인데 그때까지 모유 수유를 체화해야 한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산후조리원에서는 오전 10시에서 11시, 그리고 저녁 7시 30분에서 8시 30분, 모자동실을 한다. '모자동실' 이름에서 나의 자리는 없고 엄마의 의무만 있는 것 같다. 산후조리원 첫날 아이의 몸을 처음으로 만졌다. 첫날에 아이 얼굴에 내 손가락을 대기도 미안했다. 속싸개에 쌓여있는 아이의 가슴에 손을 올려본다. 몸통이 내 손만하다. 아이의 체온이 더 높다. 작은 심장이 더 빨리 뛴다. 왠 걸 나보다 따뜻하고 열정적인 존재다. 아이에게 나는 냉정한 사람일 수 있겠다. 혹은 아이와의 시간에 전념하지 않게 느낄 수도 있겠다. 아이는 모든 몸짓에 진심이 담겨있어 보인다. 가장 강력한 진심은 무념무상일 테니. 흐느껴 울지 않고 대차게 운다. 온 존재가 다 무너질 것 같다. 얼굴 근육의 전부를 다 쓴다. 희로애락이 티브이 광고보다 쉽게 바뀐다. 버둥거림도 진짜이다. 자연스러움 밖에 없는 것 같다. 모자 동실에 나는 아기 침대에 잠자는 아이에게 괜한 터치를 한다. 한 시간 내내 자는 아이의 몸을 만진다. 갑자기 미묘하게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금세 울어 재낀다. 처음으로 똥을 보여주었다. 엉덩이를 닦으니 똥이 더 나온다. 내가 시원해지는 것 같다. 그의 표정을 성인의 눈으로 해석하면서 눈치를 살핀다. 어제는 아이의 잠투정이 있는 것인지 아기 침대에 눕히면 앙 하고 울길래 한 시간 반 정도 왼손으로 아이의 엉덩이를 들고 오른손과 팔에 아이의 머리를 감싸고 서서 방을 천천히 걸어 다녔다. 모자 동실 마무리될 때쯤 아이가 잠에 들었다. 아이의 따뜻한 몸과 조금 차가운 내 오른쪽 가슴이 만난다.
아내가 이제 아빠가 되어가는 것 같으냐고 묻는다. 명확히 무어라 얘기할 수 없다.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아이는 계속 새로운 모습일 텐데 나 자신은 하루하루가 새로울 수 있을까? 아이로부터 힘을 얻으면서도 삶의 경탄이 사라진 것을 처자식으로 소급하는 것은 아닐까? 가식이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을 몸으로 느끼는 아이에게 나는 순순히 무너질 수 있으려나? 익숙해도 귀한 관계가 될 수 있으려나? 살아있는 한 자연스럽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