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육아일기] 떡국의 나이

결혼 12년 차 육아 0년 차

설 전날에 부모님 댁에 들러 떡국과 음식을 받아왔다. 3일 뒤에는 출산하러 병원에 가야하는데 3일 동안 매일 먹어도 남을 음식을 그렇게 싸주신다. 결혼 후 12년 동안 어머니는 그 습관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기 때문에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설날 아침 떡국을 끓인다. 어머니가 육수에 신경을 많이 쓰셨다. 닭 육수를 냈단다. 쇠고기 양지까지 있다. 역시 육수보다 떡을 많이 담으셨다. 떡 1인분 정도를 남겼다. 또 저 남은 것을 어떻게 써먹어야 할까. 남은 떡을 비닐봉지를 묶어 냉장고에 넣는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결혼하고 유학 가는 주인공 승민은 엄마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그 집은 변한 것이 없다. 엄마는 아들에게 무엇을 해주려고 냉동실을 연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비닐봉지 몇 개가 얼어서 냉동실에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주섬주섬 엄마는 비닐봉지를 담아서 다시 냉동실에 욱여넣는다. 그 모습을 보며 승민은 말한다. "엄마는 이 집이 지겹지도 않아?" 갑자기 툭 튀어나온 아들의 말에 엄마는 "집이 지겨운 게 어딨어. 집이 입이지" 그러면서 냉동실 문을 닫는다.


어머니에게 냉장고를 사드렸었다. 그런데 양문형 새 냉장고가 있어도 소용이 없다. 알 수 없는 비닐봉지들이 왼쪽 냉동실에 가득하다. 냉동실의 차가움 만큼이나 변하지 않는 어머니의 퍼주는 마음은 어쩜 그렇게 온도가 달라지지 않는 것일까. 먹고 남은 떡을 냉장고에 넣어서 곰팡이 피기 전에 떡볶이를 해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의 내리사랑에 대한 꾸준함이 지겨움이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고 건축학개론 어머니의 집은 집일 뿐 지겹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 사회에서는 새로운 권태가 있다. 너무 빠른 속도와 강한 자극에 노출된 현대인이 편안한 일상에 권태를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너무 빠른 속도 자체도 권태롭기는 마찬가지이다. 그곳에는 나와 함께한 인간의 모습이 없으면 그 시간이 추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망각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어떠한 곱씹음과 재해석이 어려운 현대의 문명 속에서 삶의 시간에 맞출 수 있는 어머니들의 태도는 나름의 속도로 은근히 움직이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70대의 두 여성 카를로타, 세비와의 하루가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들 나이의 절반이었던 서른다섯이었고 나는 그녀들 앞에서 걸음을 이끌어야겠다는 오만을 품었었다. 그들은 오전에 걷다가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오후가 되면 뙤약볕에서 걷기가 괴롭기 때문이다. 나는 앞장서다가 뒤돌아보며 그들의 걸음을 지켜봤다. 그들은 주변 풍경을 돌아보고 중간중간 나름의 휴식을 가졌다. 나에게 먹을 것을 건네며 천천히 가자고 했다. 나는 내 걸음을 걷지 못하다가 그들 앞에서 "더 이상 못 가겠으니, 먼저 가세요"라고 고백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숙소가 있었고 그들의 격려에 따라 겨우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순례길을 포기하려다가 그 날을 계기로 '내 걸음을 걷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속도만 중시했던 생각의 가벼움은 걸음의 깊은 지겨움을 깨닫지 못했었다.


아내와 내가 조용히 떡국을 먹을 수 있는 마지막 명절이다. 어머니에게 떡국 맛있게 먹었다고 인증샷이라고 보내고 싶어서 계란 지단을 만들려다가 실패했다. 겅성드뭇하게 지단을 썰어서 떡국 위에 올린다. 아내는 배가 고팠는지 지단을 국물에 섞고 이미 떡국 한 숟가락을 떴다. 아내의 명절 첫 떡국이다. 한 살을 더 먹으라고 두 번씩이나 기회를 주는 새해 명절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잊지 않고 인사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좋다. 우리나라에만 가능한 식상한 농담 "떡국을 두 번이나 먹었으니 두 살 먹어야겠네"가 귓가에 흘렀다. 식상함이 그리울 때도 있겠지만 여전히 매력적이지는 않다.


며칠 뒤에 아이를 낳는다는 이야기를 하자 식상한 농담을 하는 형이 "이제 어른이 되겠네"라고 한다. 까다롭게 굴지 않을까 하다가, "식상한 표현"이라고 한 마디 붙였다. 그러니 "아재들은 식상하다"라고 한다. 식상함, 삶의 권태로움이 어른이 된다는 것의 척도였던가. 인생 뭐 별거 없다는 말은 두 개의 극단으로 달린다. 인생 뭐 별거 없으니 '남들 사는 대로 살자'와 '내 나름대로 살자'이다. 아이의 존재가 자기 합리화와 사유의 단절, 내 변명의 근거가 된다는 것은 어른을 넘어선 인간으로서 안타까운 일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는 어떻게 어른이 될 것인가와 어떤 어른인가의 질문이 섞여있다. 그것도 삶이고 저것도 삶이지만,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가는 지금 흰 떡국을 후루룩 먹으며 어머니의 냉장고를 생각해본다. 조언 앞에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생각해본다. 말없이 떡국 한 주먹을 더 넣었던 엄마의 손길을 느껴본다. 나는 음식을 만들며 육아를 하며 그런 은근한 손길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떡국이 지겹도록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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