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2년 차 육아 0년 차
강연에서 한 심리학자는 회사에서 욕먹을 때 바지 뒷주머니에 있는 복권을 만지면서 빙긋이 웃으라고 했다. 토요일 저녁마다 찾아오는 전 국민 우울증 치료제인 로또 얘기다. 삶은 팍팍하고 고단하다. 상담심리 쪽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첫 문장이 '삶은 고단하다(Life is difficult)'인 것을 미루어봐도 그렇다. 나아지는 구석이 없다. 사회의 존재 이유가 불평등과 차별에서 기원하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사회는 불평등과 차별을 없애는데 가장 필요한 관념이기도 하다. 스캇 펙이 삶에 있어서 사랑과 훈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사랑과 훈육은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완성할 수 않는 관념 속에 훈육이 하나의 관계 맺기 방법으로 자리한다고 믿는다.
아이는 뒷 주머니 복권과 같은 존재가 될까? 처자식이 아른거려 꾹 참았다는 말은 격언 같은 변명이 되어버렸다. 몇 년 전 먼 친척이 갑자기 명절에 부모님 집에 오셔서 나를 불렀다. 할아버지 비석을 다시 만드는데 내가 아이가 없으면 이름을 넣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피식 웃었다. 내가 보일 예의는 고개를 숙이는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이 낳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다른 친적은 정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이는 결혼 생활의 큰 울타리가 되어준다"라고 했다. 마음속에서 '울타리로 가둘 결혼이면 굳이 왜 같이 살아야 하나요?'의 문장이 바깥으로 터져 나올 뻔했다. 비석과 울타리, 그 유형과 무형의 단단한 고리는 관계를 묶어주기보다 관계를 얽매이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핏줄과 결혼은 다른 상상을 막는다. 물론 잠시 안락함과 계속 불안함은 선택의 영역이다.
아이가 없던 12년 차 결혼 생활은 아이를 낳은 삶보다 더 각별할 수 있다. 그리고 결혼 없이 맞은 40대는 더 특별할 수 있다. 사회가 귀찮아질 때는 바로 그 각별함과 특별함을 유별나게 볼 때 온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보통의 삶을 살지 않기만 하면 그렇게 조언하기 바빠진다. 다른 보통의 자리는 발 끝 그림자 같다. 누구나 다 겪고 있는 삶의 어두움 말이다. 그러다 왜 조언을 스님에게서 찾을까. 결혼도 육아도 벗어나야 할 카르마의 영역이었던가. 몇 해전 즐겨 듣던 스님의 '너나 잘하세요'나 '아이고 시어머니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식 되돌이표 조언에 귀를 닫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삶은 엉켜있기 때문에 질문과 사유가 터져 나오고 결코 정답과 이론은 없다.
다만 아이가 내 변명의 이유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너 때문에 어떻게 살아왔는데'라며 기대하는 관계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나의 비루함과 사유 없음을 아이에 대한 사랑과 훈육으로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육아 경험 없는 이 공허한 말들이 얼마나 힘이 있을까. 한 마디 다짐으로 한 걸음도 내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아이를 대하며 얼마나 많은 통념을 쓰고 통념으로 옭아매려고 할까. 나는 마흔이 넘었고, 소위 쌍팔년도에 자리한 내 습관은 내 삶 곳곳을 재단하고 있다. 어릴 때 상상할 수 없었던 2021년이다. 세계는 종말도 종료도 멈춤도 없다. 아이의 삶을 둘러쌀 사회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길 원한다면 잠시 안락함과 계속 불안함을 생각해야 한다.
아이가 생겼다고 부모님에게 말한 저녁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는 친하게 지내는 이모부가 전화 준 줄 알고 반갑게 받았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내 전화기에 이모부 전화번호가 저장되어있다. 먼 친척이 전화 왔었다. 몇 달 지나서 부모님은 친척 분이 할아버지 비석에 나와 아내 이름을 넣기로 했다고 전했다. 어머니가 없는 살림에 비석 제작비 일부를 넣으셨단다. 친척께서 아이 성별도 모르는데 일단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단다. 얼굴을 들고 웃었다. 그래 그분이 평생 긁어온 복권은 핏줄과 비석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잘되라고 비석 돈을 넣으며 정령숭배 같은 복권의 모습을 보이셨다. 나는 어쩌면 신기루 같은 사랑과 자유를 그려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긁지 않아도 아이는 복이다. 아이를 위해 새로 구매한 가습기 물을 갈고 일주일마다 꼭 청소를 해야겠다. 모르는 것 앞에서 주변을 정돈하고 청소하는 게 오래된 습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