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글을 잘 쓸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아"
친구의 말을 듣고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래 맞아, 그것이었어. 고맙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했다. 2평 남짓 조그만 방에서 테이블을 마주 앉아,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미대를 나와서 영상 사업을 했었다. 그림보다 영상을 선택한 이유를 "주먹을 하나 표시하려고 해도 그림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영상은 찍기만 하면 되잖아."라고 말했다.
그가 자기표현의 결과물로서 영상과 그림을 만들었을 때 그는 떠난 순간에 남겨진 장면을 상상했을 것이다. 글이 내 마음에서 나와 손으로 옮겨지고 활자로 만들어지면 나를 떠나게 된다. 내가 떠난 자리에 남은 글로만 나를 평가하게 된다. 오롯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하는 나르시시즘적 나의 모습이 글에서는 드러나고, 타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침으로 "잘 쓰다"의 정도를 결정하게 된다. 쓰는 글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단어로 꿰뚫지 못하는 주제의 흐릿함이나, 반복적으로 퇴고를 하지 않고 글을 마쳐서 문장이 깨져있거나 주어와 술어가 맞지 않거나, 문맥에 맞지 않는 문장이 섞여있는 것은 나를 반영하게 된다. 그에게 글을 잘 쓰려고 하지 않는다는 모습으로 비치기에 충분했다.
나는 박사논문을 끝마치고 나서야 진심으로 '나와 글은 어울리지 않아, 나는 글보다는 말이 더 나은 사람인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 몇몇은 인문대 박사까지 마치고 왠 늦은 후회냐며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했고,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글 앞에 뒷걸음질 치는 모습은 논문 원고를 쓰며, 심사를 받으며 만나게 된 나의 불찰과 부끄러움에서 기인했다. 글이 생각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다고 해도, 나의 생각이 글로 표현되지 못하고 자꾸 삐걱거리는 현상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글을 쳐다보고 싶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마음속에 담긴 자신 없음과 상처를 나는 응시해야 한다. 나는 나를 딛고 일어설 수밖에 없다. 재능과 시간의 부족으로 달랠 수가 없다. 변명이 섞인 붉은 말 대신 나는 빨갛게 충혈된 사라진 눈을 들여다봐야 한다. 다시금 좁은 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