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3년 차 육아 1년 차
성큼이가 낮잠을 잔다. 어젯밤에 자주 깼던 게 고단했나 보다. 어젯밤, 늦게 영화를 보다가 성큼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보통 울음과 조금 달리 들린다. 아파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옆에서 자다가 깬 아내가 젖을 물려도 잠들지 않는단다. '이앓이' 인 것 같다고. 침대에 걸터앉아 아이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려 품에 앉았다. 아이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내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를 유영한다. 아이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흐느낀다. 어두운 밤에 베란다 조명만 키고 거실에서 치발기를 찾아와서 물려본다. 몇 번 치발기를 깨물더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10분 정도 내 품에서 잠을 재우다가 침대에 눕히려니 다시금 깨서 운다.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아이를 앉는다. 거실에서 안방 침대로 오면서 치발기를 떨어뜨렸다. 아내가 방바닥에서 찾아서 가져다준다. 아이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치발기를 물었다가 이내 떨어뜨린다. 다시금 흐느낌이 잦아들고 내 어깨에 턱을 가져다 대고 오른쪽 뺨에 아이의 오른쪽 뺨을 기대어 잠든다. 다시 침대에 조용히 누위려다가 실패했다.
침대 끝에 닿은 벽에 기대어 아이를 다시 안았다. 이미 가슴에 땀이 맺힌다. 아이의 울음이 커지다가 이내 줄어들고,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고 오른손으로 아이의 등을 쓰다듬는다. 아이가 잠드는 방법 말고는 다른 수가 없다. 몇 분 잠에 들었고 쌔근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아이를 방수 이불에 눕히려 침대에 무릎을 꿇고 침대와 평행하게 아이를 내 어깨에서 들어 침대로 가까이한다. 다리를 먼저 닿고, 그다음 엉덩이가 닿고, 내 오른손이 아이의 뒷목에 감긴 채 아이의 머리가 닿는다. 아이가 뒤척이다. 엄마 품 쪽으로 향한 채 옆으로 누워 잠이 든다. '머미 쿨쿨'로 옆으로 누운 아이를 감싼다.
50여분이 훌쩍 지나가고 그동안 울었던 아이는 엄마를 향해 누워있다. 고단해진 나는 물 한잔을 마시고 남은 영화를 보러 갔다. 50여 분과 물 한잔 들고 가는 그 시간 동안,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지나쳐간다. 나도 이렇게 이앓이를 했을 텐데, 그리고 왜 이앓이와 같은 고통을 견디며 점점 자라나게 프로그래밍되어있는 걸까.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나면 안 되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움직이는 생물과 머물러 있는 무생물은 함께 진화해왔다. 무생물이 수 천만의 시간을 가지고 풍화작용을 거치며 분화되어 왔다. 그 무생물은 대표적인 몇 가지 광물로 이뤄져 있는데, 그 광물 중에서 산소와 탄소를 제외한 무거운 금속원소는 주로 초신성 폭발과 우주의 특이한 사건을 거쳐 생성된다. 굴 껍데기를 만들어내는 석회암도 칼슘에서 왔고, 성큼이의 이빨을 만들어내는 칼슘도 우주의 어떤 초신성 폭발 이후에 지구에 도착했고, 오랜 시간 산소와 물의 포집 과정을 거쳐 지구의 구성성분이 되고 이후에 생물의 기본 물질로 자리하게 되었다. 우리 몸속에서 대부분 물인 것은 생물의 기원이 바다임을 함축한다. Na와 K가 신경전달물질을 이루는 것도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생물 분화의 흔적이기도 하다. 왜 굴은 칼슘으로 부드러운 몸을 감쌌고, 왜 인간은 부드러운 수정란과 몸 덩이 속에 뼈를 감추게 되었을까. 수많은 우연이 겹쳐서 진화를 생물은 진화를 했다. 단단함보다 유연함이 삶의 방식이었을 텐데, 어떤 이유로 인간은 칼슘을 모아 뼈를 만들었고, 더 커다란 몸을 가진 개체를 이루었을까. 그리고 왜 인간은 '자아'라는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는 역량을 만들게 된 것일까.
게다가 인간은 왜 뾰족한 송곳니가 줄어들고 음식을 잘게 쪼개는 어금니가 발달했을까, 투쟁과 사냥의 역사가 아니라, 도피와 채집의 역사가 생존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인간은 또 다르게 진화하며 정보를 더 많이 받아들이기 위해 심장을 드러내고, 도망 속도가 늦어지는 줄 알면서도 직립보행을 했다. 그것 대부분이 무생물인 '도구'의 발달과도 적잖은 공진화를 이루었다고도 할 수 있다.
아이는 두세 살까지 거울상이던 부모에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떨어지며 독립된 개체로 자라 간다. 태어날 때 아무런 무기도 가지지 못하고 태어나 그저 울기만 하는 아이는 '양육'이라는 급성장의 시기를 거쳐서 몸과 마음이 '인간화'되어 간다. 성큼이가 어젯밤의 일은 이미 잊어버린 일이 되었는지 낮잠에서 깨어 금세 웃는다. 세 살, 아이가 부모가 분리되어 독립이라는 욕망과 의존이라는 불안이 섞인 안 존재가 될 때까지, 그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온 우주만큼 복잡한 경험이 닿는 대로 아이는 우연과 필연을 거친다. '이앓이' 그 튀어져 나오는 고통의 순간도 아이이고, 물론 양육자 부모에게 처음 만나는 폭신한 젖, 잘게 쪼개서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이유식, 새콤한 과일을 잘게 쪼게 입이 넣는 순간도 아이이다. 평균적인 망각의 시간을 지나 기억하는 첫 느낌 혹은 막연하게 아이 주변에 환경에 느꼈던 감각이 아이의 바다에 온도를 결정하고 아이가 타인에게 손을 내밀 온기의 밀도를 정한다. 그 온 순간에 시간은 정지하며 공간은 한 점으로 줄어든다.
아이의 여섯 번째 이가 다시금 드러난다. 또 다른 시간과 물질, 그리고 관계가 생긴다.